검찰 수사기록, 경찰이 검토하는 건 극히 이례적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에 헛발질을 한 검찰이 경찰에게 수사 자료를 내주는 촌극을 빚으면서 체면을 구겼다. 수사체계상 수사 중인 사건 기록들은 경찰이 검찰에 제출하지 거꾸로 검찰이 경찰에 자료를 제공해주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유 전 회장의 사망 전 흔적 찾기에 주력하고 있는 전남경찰청 수사본부는 검찰로부터 유씨와 관련된 수사 자료 일부를 넘겨받았다고 28일 밝혔다. 검찰이 경찰에게 넘겨 준 자료는 유 전 회장의 도피생활을 도운 핵심조력자들의 피의자 신문조서 등 590여쪽에 달하는 수사 기록들이다. 경찰이 진술조서를 확보한 주요 피의자는 검찰이 5월 25일 순천 서면 송치재 인근의 ‘숲 속의 추억’ 별장을 급습했을 때 유씨와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여신도 신모(33)씨를 비롯 구원파 전남 동부권 총책인 추모(60)씨와 송치재가든 운영자 변모(61)씨 부부 등이다.
또 경찰은 유 전 회장의 은신처로 사용한 ‘숲 속의 추억’과 야망연수원 등 그 동안 검찰이 유씨와 관련해 압수 수색한 장소와 시간, 압수목록, 압수품, 관련 증거물 등을 확보했다. 검찰 수사 자료를 꼼꼼히 분석 중인 경찰은 유씨 행적에 단서가 될 만한 수사 자료가 더 필요한지 판단해 검찰에 자료를 추가 요청할 계획이다.
결국 경찰과 불통 공조로 유씨를 코앞에서 놓친 검찰이 유씨 사망 전 흔적을 찾는 경찰에 끌려 다니는 상황이 됐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가진 검찰에게 경찰이 자료를 전해주기만 했지, 검찰에서 수사 중인 사건 자료가 필요하다며 경찰이 검찰에 수사기록을 요청해 본 적도 없고 자료를 받아 본 기억도 없다”고 말했다.
유 전 회장 일가 수사 시작부터 경찰에 정보를 차단하고 독단으로 수사한 검찰이 유 전 회장 검거에 실패하면서 자신들의 수사 자료까지 경찰 손에 쥐어주는 굴욕을 당한 것이다. 경찰이 수사 기록을 분석하다가 만의 하나라도 수사의 허점이 드러날 경우 검찰은 더욱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됐다.
검찰의 한 수사관은 “검경이 유씨 관련 수사에 공조하지 않아 국민적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이 수사 내용을 요청했을 때 이를 알려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검찰의 위상이 땅바닥에 떨어진 상황이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순천=하태민기자 ham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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