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억달러 美 채권단과 협상 결렬 30일까지 미상환 땐 31일 국가부도
과거 채권자들 무더기 소송 압박에 아르헨, 갚지도 못하고 진퇴양난
20세기 초에는 ‘세계 7대 부국’으로 꼽혔으나, 어느덧 남미의 골치덩어리가 된 아르헨티나. 그 아르헨티나가 또다시 세계 금융시장에 직격탄을 날릴 가능성이 확실시되고 있다. 150억달러 채권을 보유한 미국계 벌처펀드와의 협상이 사실상 무산돼 이달 30일까지 상환하지 못할 경우, 31일 0시를 기해 국가부도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27일 주요 외신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이달 7일부터 미국 뉴욕에서 진행 중인 아르헨티나 정부와 미국의 오렐리우스(Aurelius), NML캐피탈의 채무조정 협상이 타결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CNN머니는 “아르헨티나가 2001년 이후 또다시 국가부도에 직면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며 “이 경우 가뜩이나 침체 상태인 아르헨티나 경제에 큰 타격이 예상되며,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이번 협상이 꼬이는 이유는 아르헨티나가 처한 매우 독특한 상황 때문이다. 열악하다고는 하지만 아르헨티나 재정은 소송 걸린 150억달러는 갚을 정도가 된다. 그러나 미국 펀드들의 빚을 갚는 순간 더 큰 문제가 시작되는 게 고민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2001년 1차 국가부도를 낸 아르헨티나는 각각 2002년과 2005년 외국 채권단과 협상 벌여 채무를 탕감 받았다. 총 외채 818억달러 중 760억달러에 대해 75~71% 가량(1억달러에 대해 2,100만~2,500만달러만 상환)을 면제 받았다. 당시 채권단은 빚을 깎아주는 대신 아르헨티나 정부가 이후 협상에서 다른 채권자를 우대할 경우, 자동적으로 자신들에게도 적용된다는 내용의 ‘루포’(RUFOㆍRight upon future offers) 조항을 관철시켰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루포’조항이 사문화되길 기대했으나, 채무조정에 응하지 않았던 57억달러 소수 채권자들이 10년을 넘긴 소송에서 이기면서 문제가 됐다. 미국 대법원이 6월16일 아르헨티나 정부는 오렐리우스와 NML캐피탈의 원리금 지급 요구를 수용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의도가 불순한 벌처펀드 요구를 들어주면, 채무를 탕감했던 다른 채권자들도 소송을 걸어와 아르헨티나가 큰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호소했지만, ‘채권자 보호’ 원칙이 워낙 강고하게 자리잡은 미국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국제금융센터는 아르헨티나가 국가부도를 선언할 경우 국제금융시장의 불안감이 크게 증폭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2001년 이후 국제금융시장에서 아르헨티나가 사실상 퇴출된 상태인 만큼 부동에 따른 직접 피해는 크지 않지만, 투자심리 위축으로 큰 충격파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계 3대 곡물 생산국의 혼란으로 국제 곡물가격의 급등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아르헨티나가 사태는 소수가 반발하면 ‘시장 안정’을 위해 다수가 동의한 채무조정이 물거품 된다는 걸 보여준다”며 “향후 위기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속한 지원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대타협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양측 모두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으나, 부도 처리되면 서로 잃는 게 너무 크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혼란에 빠지는 건 당연하고, 10년간 물고 늘어졌던 벌처펀드 역시 그나마 챙길 수 있던 원금을 모두 날리게 된다. CNN머니는 “2002년과 2005년 빚을 깎아준 채권자들이 분노하지 않는 ‘절묘한 수준’으로 원리금을 더 지급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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