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보기에 따라 기준을 정하기에 따라 또 각자가 느끼기에 따라서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다. 그만 하면 충분히 먹고 살만하다고 다들 생각하는 사람도 자신은 가난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루 한 끼 근근이 먹고 살면서도 자신이 결코 가난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차이는 개인 마다 있을 수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벌어지면 문제가 달라진다. 정부나 국민이 가난을 정하는 기준을 바꾸려고 들 경우 정책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고민을 하기 시작한 나라가 있다. 12억 인구 대국 인도다.
27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인도 정부 산하 위원회는 지난달 새로운 계산 방식에 따라 인도 인구의 약 30%가 가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집계했다. 이 수치는 이전 공식 조사 22% 보다 상당히 늘어난 수치다. 이 수치 변화로 인도에서는 가난한 인구가 9,400만명 더 늘었다.
가난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인도에서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이 나라가 경제 발전에도 불구하고 영양 결핍과 높은 신생아 사망률로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 속도는 빠르지만 늘어난 물질적 풍요가 얼마나 고르고 널리 배분되느냐 하는 의문도 있다.
세계은행은 하루에 1.25달러 이상 쓰지 못하는 사람들을 빈곤 인구로 정하고 있다. 이 수치는 최빈곤 국가들의 가난 기준을 평균한 것이다. 유엔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년간 세계은행이 정한 이 빈곤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절반으로 줄어 현재 12억명이다. 그 인구의 3분의 1이 인도 사람들이다.
하지만 하루 1.25달러를 넘어서면 빈곤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 기준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래서 궁핍한 사람들을 자신들의 수입으로 병을 치료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로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 세계은행 직원으로 근무한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자 란트 프리쳇은 ‘1.25달러 빈곤선’은 “개발되지 않은 국가”의 기준일 뿐이라고 말한다.
빈곤 기준에 대한 논쟁은 여러 나라에서 일찌감치부터 있었다. 미국의 공식적인 빈곤선은 1963년 정부 소속 경제학자가 4인 가족에 필요한 음식값을 기준으로 처음 제정했다. 하지만 끼니를 때우는 것만으로 빈곤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 경제학자는 가구당 수입의 3분의 1 정도가 먹는 비용에 쓰인다는 것을 감안해 당초 수입에 곱하기 3을 해서 연간 3,165달러를 빈곤선으로 제시했고 지금도 이 수치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1인당 하루로 계산하면 2.16달러가 된다.
하지만 이 기준을 두고 시대착오적이고 비판하는 경제학자들도 적지 않다. 미 인구조사국은 2011년에 새로운 빈곤선 지침을 제시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공개 청문회에서 “구시대적” 빈곤 기준이 “더 이상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기준이 아니다”고 지적하고나서부터다.
이런 비슷한 일이 지금 인도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지난 20년간 가족 생활 수준이 미국에서 지난 100년간 바뀐 것보다 더 많이 변했다. 델리의 자와할랄네루대 경제학자인 히만슈는 “우리의 갈등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고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라며 “빈곤선의 역할도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인도 정부는 지난달 낸 보고서에서 빈곤의 기준을 정하는 지금까지의 방식을 크게 두 가지 바꿨다. 식사 전체 칼로리를 기본으로 삼아 단백질과 지방 섭취량에 대한 최소 기준치를 감안하는 최신 의료 자료를 써야 한다는 것이 하나이고, 먹는 데 쓰는 비용 외에도 교육, 의류, 주거, 교통비 등 네 가지 필수 요소에 대한 월별 평균 지출을 추가한 것이 또 하나다. 그 결과 인도 도시 지역에서는 1,407루피(2만4,000원) 이상, 시골에서 972루피(1만6,600원) 이상의 수입이 없다면 빈곤층이었다. 지금까지 기준과 비교했을 때 6,000원 정도 늘었다.
인도에서는 대법원이 2011년 정부를 향해 빈곤선 재조사를 요구한 적이 있었다. 빈곤선의 범위가 진짜 가난한 사람들을 포괄하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하루 30센트(300원)로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빈곤층이 아니냐고 물었다. 인도 정부의 새 보고서는 대법원이 지적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컨설팅그룹 맥킨지의 경제학자 아누 마드가브카르는 “빈곤 기준을 새롭게 정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수요를 더 명확하게 파악해 정부 정책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탈주(the great escape)’라는 책을 쓴 프린스턴대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은 빈곤층의 기준을 세우는 것은 정책 입안자들, 대중 그리고 빈곤층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민주적 합의의 과정이지 과학적으로 계량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박경균 인턴기자(서울시립대 영문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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