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유엔시설 피격 등 위상 흔들 카타르機 이용해 이스라엘 자극도
이달 초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군사충돌의 또 다른 희생자는 유엔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중재 노력이 먹히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안전한 대피소로 여겨졌던 가자지구의 유엔시설이 공격 대상으로 전락했다. 유엔 위상이 흔들리는 데에는 유엔이 현지 상황에 적절이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한 몫하고 있다. 24일 가자지구의 유엔학교 시설이 포격 당한 이후 유엔 대응이 그런 대표적 사례다.
서방 언론은 처음 이스라엘군이 현지 유엔시설을 공격해 유엔직원과 어린이들을 포함해 최소한 16명이 숨지고 100명 가량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반기문 사무총장도 즉각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고, 유엔 본부는 사실상 이스라엘을 공격자로 시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누가 유엔시설을 공격한 것인지 정확하지 않다고 반발하며 하마스 소행 가능성을 제기하자, 유엔은 성명서를 철회하는 소동을 빚었다. 결국 유엔은 유엔시설에 대한 공격은 있었지만 누가 공격자인지 확인하지 못했다는 입장으로 물러섰다. 같은 날 유엔 정례브리핑에서는 이스라엘이 유엔학교 공격 가능성을 사전 통보했으나 유엔측의 철수 결정이 늦춰지면서 현지 인원들을 제때 소개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제기됐다. 또 가자지구 유엔시설 내에 하마스의 로켓이 보관돼 있었다는 점이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유엔을 더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3일 뒤 이스라엘군의 발표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27일 유엔학교 마당에 오폭을 한 사실을 인정하고, 다만 포격 당시 현장에 사람들이 없었다는 논리를 폈다. 인명 피해는 자신들의 공격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는 얘기인데, 유엔으로선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난감해졌다.
유엔을 이끄는 반 총장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주 평화협상 중재를 위해 중동 순방에 나선 반기문 총장은 카타르가 제공한 전세기를 타고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바람에 중재 노력의 색이 바래버렸다. 유엔 사무총장은 전용기가 따로 없어 회원국이 ‘기부’형태로 제공하는 전세기를 타고 순방 일정을 소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문제는 공교롭게도 이번 반 총장의 중동 순방에 카타르가 전세기를 제공한 것이다. 카타르는 하마스의 재정적 후원자로 알려져 있어 이스라엘로선 사실상 하마스와 카타르를 동일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23일 예루살렘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반 총장을 향해 카타르 전세기를 이용한 게 적절한가라는 질문이 나온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문제는 다음날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과 반 총장의 회담에까지 여파가 미쳤다. 강경파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달리 온건주의자로 알려진 페레스 대통령은 회담 뒤 평화협상 문제가 아닌 카타르를 비난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보기에 따라선 카타르의 전세기를 타고 중재하러 온 반 총장의 신뢰도를 흔들어버린 것으로 여길 수 있는 장면이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반 총장이 이번 가자 충돌 첫 일주일 동안 이스라엘을 향한 하마스의 로켓 공격 등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으며 중동 첫 순방국가로 카타르를 선택해 중동국가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했다. 반 총장이 친이스라엘 행보라도 보여야 이런 이스라엘 정부나 언론의 의구심이 사라질 분위기다. 미국의 중재조차 효력 없는 중동분쟁의 불똥이 유엔과 반 총장에게로 튀고 있는 셈이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8일 긴급회의를 열어 가자 사태에 대해 ‘조건 없이 인도주의적으로 즉시’ 휴전해야 한다는 의장성명을 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이날 일시 교전을 중단해 거의 충돌이 없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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