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통’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줬던 맬컴 글래드웰의 주장을 뒤집는 연구가 발표됐다는 보도가 나와서 많은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그는 명저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노력에 집중했던 사람들만이 특별한 성공자인 아웃라이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미시건주립대의 잭 햄브릭 교수 연구팀은 노력을 통해 실력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확률은 특히 학문연구 분야가 낮아 4%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런 논의를 개인적인 성공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성패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개인이 선천적으로 좋은 머리와 재능을 타고났다는 것은 도시로 보면 풍부한 자연자원이나 역사적인 자원, 입지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성공하기 쉽듯이 풍부한 자원을 가진 도시들은 대도시로 성장하거나 높은 소득을 구가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천부적으로 뛰어난 두뇌나 특별한 재능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대부분의 도시나 지역들은 특별히 내세울만한 역사적인 자산이나 자원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평범한 학생이 어느 날 스타가 되듯이 특별한 자원이 없거나 환경이 아주 척박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과를 보여줘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도시들이 종종 학계나 언론에 소개되곤 한다. 바다를 메워 인공위성에서도 보이는 더월드와 팜주메이라와 같은 상징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한 두바이나 산업쇠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해 문화재생에 성공한 빌바오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국내에서 대부분 지자체들의 슬로건이 돼버린 창조도시는 아무런 자원을 갖지 않은 도시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만을 통해 외국자본이나 관광객 유치에 성공한 도시를 의미하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그래서 창조도시 만들기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거나 상징적인 랜드마크를 건설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립이나 초고층빌딩 건립 사업이 창조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기도 했다.
특별한 재능을 갖지 못한 청년들이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꿈꾸듯이 그 동안 특별한 자원이나 유산을 갖지 못한 도시들도 대규모 프로젝트를 유치해서 ‘팔자’를 고쳐보려는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창조도시나 지역마케팅은 이들 도시들에게 좋은 명분을 줬다. 기업도시나 경제자유구역과 같은 투자유치 특구로 지정되거나 세계박람회나 국제적인 스포츠경기를 경쟁적으로 유치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실적부진이나 행사 후 막대한 재정적자 문제는 모두 수용능력을 넘어선 창조도시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모든 사람이 다 스타나 유명한 학자가 될 수 없듯이 모든 도시가 다 창조도시가 될 수는 없다. 성급한 창조도시를 통해 대박을 꿈꾸기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주민의 행복 증진에 정책의 우선순위가 부여돼야 할 것이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시(市)는 외형적인 투자유치나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건강과 도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주민들의 합의와 참여를 통해 노력한 결과 오늘날 세계적인 환경수도가 되었다. 브라질의 꾸리찌바가 타임지로부터 ‘지구에서 환경적으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로 평가받는 이유도 자이메 레느네르 시장이 1965년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도시계획연구소(IPPUC)가 있었고, 그 속에는 시민과 환경보전을 위한 따뜻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잭 햄브릭 교수팀의 연구결과가 아니더라도 개인이나 도시에서나 노력만으로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노력에는 단순히 욕망과 열정만이 아니라 창조성과 전문성이 갖춰져야 한다. 더욱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노력도 하지 않고 창의성도 갖추지 않은 채 개발특구 지정을 통한 규제완화나 카지노나 외자유치만으로 지역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쩌다 벼락을 맞아서 보통사람이 천재가 됐다는 해외토픽을 들은 적은 있지만, 아무도 천재가 되기 위해 벼락을 기다리지는 않는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철저한 준비와 창의적인 노력 없이는 대박은 없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ㆍ한국도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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