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여주고 재워준 곳을 하루 아침에 문닫게 만든 방화범을 원망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27일 서울 가리봉동 이주민 복지센터 ‘지구촌사랑나눔’ 급식소에서 만난 김해성(54) 대표는 참혹했던 화재를 떠올리면서도 환하게 웃었다. 지난해 10월 8일 지구촌사랑나눔 건물 1층 급식소는 중국동포 김모(45)씨가 지른 불에 전소됐다. 센터는 화재보험을 들지 않아 보험 처리를 기대할 수 없었고 김씨의 가족이라고는 중국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고령의 부친과 두 자녀뿐이라 손해배상을 청구할 여건도 되지 않았다.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센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과 기업ㆍ개인의 십시일반 성금을 통해 모인 3억여원으로 재건에 성공, 6월 10일 다시 문을 열었다. 그 뒤에는 “아무리 참담하더라도 용서하고 희망을 가지면 일어설 수 있다”고 기도했던 김 대표가 있었다.
김 대표는 중국에 있는 김씨의 두 자녀를 한국으로 데려와 돌보겠다는 약속(본보 2013년 12월 7일자 9면)을 지켰다. 불을 지르고 투신한 김씨는 사건 나흘 뒤 숨졌다. 김 대표는 김씨의 장례식을 치르던 중 중국 옌지에 살고 있는 그의 아들(15)과 딸(5)의 존재를 알게 됐다. 김 대표는 남매가 고령의 할아버지(86) 손에서 어렵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입양을 결심했다.
입양 절차를 진행하던 올해 1월 예상치 못한 손님이 김 대표를 찾아왔다. 남매의 친모이자 김씨의 전 부인인 중국동포 임모(40)씨였다. 임씨는 경기 안산의 제조업 공장에서 일을 하며 지내다 김 대표의 사연을 뉴스를 통해 듣고 센터를 찾아왔다.
형편이 어려우니 남매를 대신 잘 키워 달라고 요청한 임씨에게 김 대표는 “그래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엄마가 옆에 있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김 대표는 남매를 센터에서 돌보며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김 대표는 지난 5월 딸을, 7월엔 아들을 지구촌사람나눔 쉼터로 데려왔다. 김 대표의 진심에 마음을 움직인 임씨는 일요일마다 안산과 서울을 오가며 남매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 대표는 “아이들이 ‘한국 생활이 즐겁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큰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전해올 때면 세상에 없는 김씨를 위해 남매를 잘 키워야겠다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민 복지센터 대표이기 전에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종교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구촌사랑나눔 산하 중국동포교회의 목사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160만여명의 이주민이 살고 있는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포용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몇몇 외국인이 저지른 범죄로만 그들을 판단한다면 한국은 유럽이 일찍 경험한 인종 간 폭동 사태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이주민을 우리의 이웃이라고 받아들일 때 건강한 다문화 사회가 정착될 것입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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