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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의 길 위의 이야기] 속사정

입력
2014.07.2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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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미술 쪽 책 한 권을 주문했다. 일주일 안에 재빨리 훑어볼 사정이 생긴 까닭이다. 당일배송이라니 늦어도 내일이면 도착하겠지. 촉박하지는 않겠다며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사흘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운송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어라? 배송완료라고?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나의 실수임을 깨닫는 데는 별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배송지가 I의 주소로 되어 있었다. 예전에 I에게 선물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때 기록된 주소가 자동으로 입력된 걸 모르고 내처 클릭, 클릭, 해버린 것이었다. 다시 주문할 여유가 없었던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고, 가는 길에 I에게 문자를 받았다. 너무 감사해요. 옛 기억도 풀풀 솟아나서 얼마나 반갑던지. 공교롭게도 I는 미술을 전공한 친구였다. 또한 우리는 서로 호감만 있을 뿐 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한참 전에 이 책을 보았을 그녀는 난데없는 우편물에 얼마나 어리둥절했을까. 나는 실수로 보냈다기가 미안해서 얼렁뚱땅 둘러댔다. 책을 읽다 갑자기 I씨 생각이 나서요^^. 그러고 나서 서가에서 그 책을 찾아 페이지를 넘기는데,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기대와 달리 내용은 조악하고 도판은 엉망이었다. I가 지었을 씁쓸한 표정이 눈에 선하다. 자신이 그 수준으로 보였다는 것이 분할 것도 같고, 책을 보낸 나를 한심해 할 것도 같다. 나로서도 이제 와 사실을 털어놓을 수는 없으니, 이래저래 벙어리 냉가슴이랄 밖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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