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서 쌓은 학력·경력 무용지물, 회원 70%가 이공계 출신이지만
대부분 남한사회 진입 장벽에 좌절… 일용직 등 전전하며 회한의 나날
“인터넷 강국에서 마음껏 연구하고 싶었어요. 북한에서 20년 넘게 대학교수였으니 인정받을 줄 알았죠. 하지만 남한 사람들은 절 과학자가 아니라 탈북인으로만 대했어요.”
평양 김책공업종합대에서 보안솔루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함흥컴퓨터기술대 교수로 일하다 2003년 탈북한 김흥광(54) NK지식인연대 대표는 27일 서울 대흥동 연대 사무실을 찾아간 기자에게 “탈북 과학자들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NK지식인연대는 북한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 분야에서 일했던 탈북인들의 단체로 회원 350명 중 약 70%가 이공계 출신이다. 최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김 대표를 비롯한 이공계 회원 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3.3%가 “남한 사회에서 진입 장벽을 느꼈다”고 답했다. 남한에서 과학기술 전문성을 활용한 경험도 26%에 불과했다. 원인으로는 ▦교육시스템과 용어의 차이 ▦경력 불인정 ▦북한 출신에 대한 선입견 등이 꼽혔다.
우리나라 석사에 해당하는 학위가 북한에선 학사다. 학사 논문이 통과되려면 현장에 기여했다는 확인서가 있어야 한다. 김 대표는 “연구에 필요한 온도계나 모터 등을 직접 구입해 군수공장 자동화 기술을 개발해 논문을 썼다”며 “돈 없으면 학위 딸 생각조차 못한다”고 말했다. 더구나 박사학위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승인해야 받을 수 있다.
어렵게 공부한 만큼 북한 과학자들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한편으론 자유로운 연구환경에 대한 동경도 커진다. 김 대표에 따르면 북한에선 연구용 부품을 중국 밀매업자를 통해 구입해야 하고, 인터넷은 몇몇 특수기관에서만 쓴다. 일본을 통해 들어온 외국 과학잡지가 비치돼 있는 유일한 도서관에서 한국에 대한 글을 접한 뒤 김 대표는 1년 간 치밀하게 탈북을 준비했다. “과학 이외의 내용은 먹으로 지워놓은 탓에 잡지를 몰래 화장실로 가져가 창문에 비춰가며 읽었다”는 그 글에는 “한국이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남한의 현실은 그러나 냉혹했다. “전공을 살리고 싶어 한 교육센터에서 6개월 간 보안 분야를 공부했는데, 기술 구성도 용어도 너무 달랐다”는 것이다.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어도 길이 안 보였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리라 마음 먹고 일용직으로 취업해 여기저기 인터넷 망을 깔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경제 및 IT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러자 수도권 몇몇 대학에서 겸임교수직을 제안해왔다. “드디어 내 연구를 할 수 있겠구나 싶었지만, 얼마 안돼 강의만 하는 불안정한 시간강사란 걸 알게 됐다”는 김 대표는 “그나마 전 나은 편”이라고 한숨 지었다. “한 탈북 여성 과학자는 요양병원에서 노인들을 업어 옮기고 대소변을 처리하다 무릎이 망가졌고, 천재라 불리던 김책공대 후배는 택배로 생계비를 번다”는 것이다. 탈북 의사가 한국의 병원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닥터 이방인’은 그저 드라마일 뿐이다.
김 대표는 “북한 과학기술 중에도 소프트웨어, 우주계측, 원자력, 수학 등은 눈에 띄게 발달해 남한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여지가 있는데, 평가 받을 기회조차 없이 폄하되고 무시받는 현실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자신도 “스테가노그래피(정보은닉) 기술로 만든 북한의 암호화 이메일을 읽어내는 프로그램 개발 등에 기여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다행히 과학계 한편에서 통일에 대비해 남북한을 모두 아는 통합형 과학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작지만 나오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남북한 과학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데 탈북 과학자들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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