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된 호남고속철도 입찰 담합 사건에는 국내 주요 건설사 대부분이 연루됐다.
이들은 '경쟁을 통한 적정가격 낙찰'이라는 입찰 제도의 취지를 무시한 채 눈속임으로 공사를 따냈다.
건설사들은 과도한 과징금으로 경영에 큰 타격을 입는다며 울상이지만, 전문가들은 고질적인 담합 관행을 근절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예정된 낙찰자와 들러리들…눈속임으로 입찰
27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현대건설, 대우건설, 삼성물산 등 건설업계 '빅7' 임원들은 2009년 여름 국책사업인 호남고속철도 19개 공사구역 중 13개 구역을 나눠먹기 식으로 낙찰받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각 공사구역별로 누가 낙찰받을지를 미리 정하고 낙찰 예정자를 제외한 참가자들은 들러리를 서줬다.
이로써 예정된 낙찰자가 미리 계획해둔 가격으로 공사를 따낼 수 있었다.
GS건설, 현대산업개발, 쌍용건설의 임원들은 2009년 11월4∼5일 비밀회동을 가졌다.
호남고속철도 한 공사구역의 입찰 마감일(11월6일)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이들은 저가 투찰을 막기 위해 투찰률과 투찰가격에 대한 각사의 기밀을 공유했다. 그 결과 이들의 의도대로 쌍용건설이 2천6억원에 낙찰됐다.
대형 건설사 28곳이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에서 이런 방식으로 입찰담합한 금액은 3조5천980억원에 달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담합을 안 했으면 그보다 낮은 가격으로 계약금액이 결정됐을 것"이라며 "그 차이만큼 국민 세금이 부당하게 기업으로 흘러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건설사들은 제재를 피하기 위해 담합했다는 의심을 사지 않을 가장 높은 선에서 낙찰가를 합의한다"고 덧붙였다.
입찰 담합을 적발한 공정위는 28개 건설사에 시정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과징금 4천355억원을 부과하고 기업 법인과 주요 임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 과징금 액수는 역대 전체 담합사건 중 두번째, 역대 건설업계 담합사건 중 가장 많은 액수다.
전문가 "담합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 많아야 근절가능"
건설업계는 입찰 담합행위를 반성하면서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건설경영협회는 최근 선언문에서 "많은 국책사업이 사실상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에서 발주됐지만 사업을 차질없이 완수한다는 사명감으로 공사를 수행했다"며 "그런데도 엄청난 부당이익을 챙긴 것처럼 호도돼 억울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연이은 입찰담합 조사와 과징금, 손해배상 소송 등으로 건설사들이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며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재계에선 건설사들이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바가 큰 점을 고려해 당국이 제재 수위를 낮추거나 일정 기간 유예해야 한다는 의견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명백한 위법행위인 입찰 담합을 근절하려면 처벌 수위를 크게 올려야 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시민단체는 건설사들이 담합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지 않으면 불공정행위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국책사업팀장은 "기업들 입장에서는 담합을 해서 공정위에 적발돼 과징금을 내더라도 '남는 장사'"라며 "과징금을 상향조정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실련이 그동안 입찰 담합에 관한 공정위 제재를 조사해보니 대부분 사건의 과징금이 해당 기업 관련 매출액의 5% 이내의 범위 내에서 부과됐다.
입찰 담합한 계약금액이 1조원일 경우 500억원보다 낮은 금액의 과징금이 부과됐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담합을 한 기업들이 일정 기간 입찰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건설사들이 담합을 하더라도 입찰 참가자격까지 제한해 미래 영업활동을 제약해서는 안된다"며 조만간 소관부처에 관련 제도 개선을 요청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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