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 갈 곳 없는 이주민에 정신적 안식처
혼인 기간이 2년 미만이더라도 국적 신청 가능하도록 법 개정 앞장
#1. 6년 전 한국인 남편을 따라 제주도에 신접살림을 차린 20대 중반의 중국인 여성 A씨는 결혼한 지 1개월 만에 집을 뛰쳐나왔다. 평소 자상한줄 알았던 남편이 갑자기 돌변해 밥 먹는 도중 갑자기 시어머니를 때리는가 하면 A씨에게도 무턱대고 폭력을 휘둘렀다. 이유인즉, 귀신이 시켰다는 것이다. 폭력을 피해 집을 나오자 남편은 가출 신고를 내면서 위장결혼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는데 A씨가 한국에 거주하기 위해 속여서 결혼했고, 목적을 달성하자 도망쳤다는 것이다. A씨는 억울했지만 한국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였다.
#2. 2008년, 대전에 살던 중국인 여성 B(당시 34세)씨도 추방당할 위기에 처했다. 1년 반 가량 남편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왔는데 남편이 갑작스럽게 불교에 귀의, 출가하겠다고 선언한 것. 남편은 스님이 되기 위해 가족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이혼을 요구했고, B씨는 별 생각 없이 이혼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B씨는 뒤늦게 합의 이혼을 하면 국내에 체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위기에 처한 A씨와 B씨가 도움을 얻으려 찾아간 곳이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서울중국인교회(2010년 4월 영등포구 대림동으로 이전) 최황규(51) 담임목사였다. 최 목사는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상세히 적은 상담일지를 법무부에 제출했고 이것이 사실확인서로 인정돼 가까스로 체류연장이 받아들여졌다.
11년째 중국인의 벗으로 살다
서울중국인교회의 최 목사는 11년째 중국인들과 동고동락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 간 중국인만 5,000여명에 달한다. 최 목사는 “중국인 가운데서도 특히 한족의 어려움을 함께하고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게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최 목사는 상담뿐만 아니라 결혼이민 피해 여성들이 국내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국적법을 개정하는 데도 앞장섰다. 2004년 개정된 국적법은 폭력 등 한국인 남편의 잘못으로 결혼생활이 어려울 경우 혼인기간이 2년 미만이더라도 국적신청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전에는 혼인기간이 2년이 넘지 않으면 이유를 불문하고 피해 여성들이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피해 여성들의 사례를 수집했고, 시민단체 정치권과 연대해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들을 돕는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갖은 협박에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도 있었다. “8년 전 몸에 문신이 그려진 40대 후반의 건장한 남성이 찾아와 욕을 하며 저를 두들겨 패려고 한 적이 있었어요. 남편의 폭력으로 저희 교회로 피신한 아내를 찾으러 온 거죠. ‘네가 뭔데 남의 마누라를 숨겨주냐’는 식이었어요. 당시 20명 가량 되는 신도들이 몸으로 막아주지 않았으면 큰 일 났을 겁니다.”
30대 남성이 다짜고짜 교회에 들어 와 ‘중국인 돕는 교회 불 태워버리겠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성화봉송 현장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이 반중국 시위를 벌이던 한국인을 폭행한 일이 있어 중국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한국인과 중국인의 진정한 화합이 목표
그가 중국인들을 돕는 건 한국인과 중국인이 진심으로 화합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한중 교류는 날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지만 서로를 미워하는 탓에 크고 작은 갈등이 있어온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베이징올림픽 때 중국인들이 한국선수들을 향해 야유를 보내고, 반대로 한국인들은 중국인을 무시하는 등 서로에 대한 마음의 벽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한반도와 중국은 역사를 봐도 필연적으로 상호작용 할 수밖에 없는데, 이왕이면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길을 걸어갔음 하는 거죠.”
한국인 남편으로부터 상처 받은 중국인 여성들을 위로하는 것은 물론, 중국인에게 피해를 당한 한국인들을 위해서도 도움의 손길을 뻗는다. 서울중국인교회 신도들은 2008년 십시일반 모은 160여만원을 해양경찰청에 전달했다. 중국어선을 검문하다가 중국 선원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바다에 빠져 숨진 고 박경조 해경을 위해서다.
최 목사는 궁극적으로는 이곳을 ‘신라원’과 같은 장소로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신라원은 통일신라시대 신라 사람이 중국 당나라에 세운 사찰로, 당나라에 거주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적 안식처 역할을 했다. “한반도와 중국 대륙이 붙어있는 한 이곳이 영원한 중국인들의 쉼터가 됐으면 좋겠어요.”
최 목사는 1999년 이화여대에서 열린 한 심포지엄에서 중국 반체제 인사인 쉬보씨를 만나 국내에서 고립된 그를 돕는 일을 계기로 외국인 난민 돕기 운동에 본격 뛰어들었다. 이후 구로구에 위치한 서울조선족교회의 요청으로 2000년부터 약 3년 간 이곳에서 부목사를 지냈고, 중국인 중에서도 언어 등의 문제로 힘들었던 한족들을 돕기 위해 2003년 서울중국인교회를 세웠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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