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미주의자에게 학살 현장은 장관(壯觀)이다. 악(惡)에서 피어난 미(美)를 시로 회화로 재현했을 터. 반면 피카소는 목격자다. 그의 그림은 증언을 위해서다. 망각에서 우릴 구한다.
“학살은 오마주된다. (…) 학살은 스스로를 숭배하여 새로운 학살로 제단을 높인다. 거기서 피는 향기로운 술로 익고 목숨은 훈장 숫자로 바뀌어 환산되고 신음소리는 취주악으로 편곡되어 울려 퍼진다. 피카소는 프란시스코 고야를 오마주한다. (…) ‘5월3일’(1808) 귀가 멀어가고 있던 고야는 죽음이 내뿜는 소리를 들었다. ‘혁명군대’ 나폴레옹 무리는 에스파냐를 도륙하고 있었다. (…) 가로 268 세로 347 사각형은 그 학살을 다 옮기기에는 턱없이 작았지만 반인륜적 폭력을 학살당하는 자의 시선으로 형상화한 인류사적 고발이자 추념비다. (…) 학살이 오마주되지 않았다면 피카소는 게르니카 작업도, 학살을 내용으로 한 또다른 그림을 그릴 필요도 없었다. (…) 다섯 병사의 눈을 그려놓았는데 모두 검은 눈동자뿐이고 한 사람만 흰자위가 보인다. 아마도 그가 목격자이리라. 쏘는 자도 죽어야 하는 자도 모두 벌거벗었고 밀집대형이다. 한쪽은 인간성을 벗어버렸고 다른 한쪽의 생명을 막 벗겨낼 참이다. 이것이 학살이다. 작품 구도와 내용은 ‘5월3일’을 고스란히 오마주하고 있다. 다만 그림 무대는 한국이다. ‘한국에서 학살’(1951). 두번째 게르니카라고 불러도 좋다. 한국인에게 피카소는 이렇게 입체적 죽음으로 찾아왔다. (…) 피카소가 위대한 것은 입체파를 대표해서만은 결코 아니다. 그는 세상을 보았고 세상을 그렸고 세상과 싸웠다. 두 개의 학살언어를 통해 그는 격동하는 리얼리스트의 심장으로 현재에 숨쉬고 있다. ‘게르니카’에 비겨 ‘한국에서 학살’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건 우리 사회 내부에 웅크리고 있는 두꺼운 망각이 공포의 다른 이름으로 군림해왔다는 걸 입증하고 있다. (…) 200만명 가까이 죽은 뒤 정전협정을 체결한 내일, 그리고 오늘 저 가자지구에서는 누가 학살을 오마주하고 있는가.”
-학살 오마주(한겨레 ‘크리틱’ㆍ서해성 소설가) ☞ 전문 보기
“사진 한 장이 일주일 내내 송곳처럼 가슴을 찔렀다. 늦은 밤 이스라엘 스데롯 언덕을 찍은 사진이다. (…) 그 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폭격했다. 언덕 위의 이스라엘인들은 폭음이 터질 때마다 환호했다고 기자는 전했다. 누군가의 참혹한 죽음이 누군가에겐 밤나들이의 소소한 기쁨이었음을 증명하는 사진이다. (…) 명분이 아무리 그럴 듯해도,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생명을 앗는 짓은 피해야만 하는 마지막 선택이다. 어쩔 수 없이 죽고 죽이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이 억울한 주검들의 목격자가 돼야 한다. 왜 그들이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한 명이라도 더 살릴 방법은 없었는지 따져야 한다. 무섭고 슬프고 아파서 외면하고 싶더라도 목격자답게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목격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낼 필요가 있다. (…) 목격자가 아닌 구경꾼으로 전락하는 이들도 있다. 스데롯 언덕에 모여 웃고 떠든 자들이야말로 전형적인 구경꾼이다. 타인의 불행에 가슴 아파하며 눈물 흘리거나 위로의 말을 건네는 대신, 그 죽음을 조롱하는 자들! (…) 말하긴 어렵고 침묵하긴 쉽다. 폭격 외엔 방법이 없었느냐고 문제제기하긴 어렵고 군인과 민간인을 잘 가려 조준하라고 충고하긴 쉽다. 기억하긴 어렵고 망각하긴 쉽다.”
-구경꾼과 목격자(한국일보 ‘문화산책’ㆍ김탁환 소설가)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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