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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상을 풍자했다, 간결한 선 하나로

입력
2014.07.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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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광풍 속 정치적 고뇌 안고 1969년 본격적 카투니스트 활동

더 이상 단순할 수 없는 선과 글에 현실과 비현실의 모든 걸 담아

"카툰에는 분명한 진정성이 있다" 그가 찾던 진리는 '유머'였을까

#1 지팡이를 든 순례자가 ‘진리(Truth)’라는 표지판을 따라 힘겹게 걷고 있다. 문제(?)는 길이 아니라 트레드밀 위라는 거다. (초월적 삶에 대한 조롱일까,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일부 구도자를 비웃는 걸까.)

#2 지팡이를 든 순례자가 ‘진리’표지판을 따라 걷다가, 실망한 표정으로 되돌아오는 남루한 차림의 다른 순례자를 만난다.(‘진리’에 실망한 것인지, 너무 힘들어 중도에 포기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찰스 바소티의 카툰은 초등학생도 따라 금세 따라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간결한 선들로 완성된다. 컷 안의 캡션 역시 없거나 한 두 단어, 길어야 간단한 한 마디가 전부다. 그는 40년 넘게 다양한 매체에 카툰을 그렸고, 그것들로 자신이 아는 인간과 세계의 어둠과 빛을, 추함과 아름다움을 넉넉히 담아냈다. 그의 카툰이 던지는 메시지와 질문들은 함축적인 유머와 버무려져 뭉툭하고 잔잔한 웃음을 자아냈고, 매섭고 신랄할 때에도 왜 웃는지도 모른 채 웃게 하곤 했다.

사실 그에게 유머는, 그 어떤 메시지보다 우선적으로 전달하려 했던 ‘진리’였을지 모른다. 실제로 바소티는 뉴요커 카툰 편집장에게 유머가 그 자체로 진리의 한 형태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렇다면 위에서 예를 든 두 컷의 작품은 바소티 자신의, 유머라는 진리를 추구하는 카투니스트로서의 삶의 연민과 반성, 또 포기할 수 없는 고집의 고백일 수도 있다. 그렇게 그의 작품들은 짧은 시처럼 깊고 간결했고, 다양한 해석의 층위들을 지니곤 했다. 그를 사랑한 독자들은,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각자의 해석을 놓고 논쟁을 벌이곤 했고, 그런 다양한 이해를 통해 그의 작품들을 풍성하게 했다.

그는 자신의 주무대였던 뉴요커의 1,400여 컷을 비롯해 뉴욕타임즈, 더 아틀란틱 등과 일하며 수천 장의 작품을 남기고 6월 16일 뉴저지주 캔자스시티 자택에서 뇌암으로 숨졌다. 향년 80세.

찰스 브래넘 바소티(Charles Branum Barsotti)는 1933년 9월 28일, 미국 텍사스주 산마르코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하워드는 아일랜드계 이탈리아인으로 시카고에서 살다 텍사스로 이주한 노동자였고, 어머니 다이시는 역사 교사로 독실한 남부 침례교도였다. 그는 자신의 집안을 “중산층의 가치관을 지향하는 하위 중산층”으로, 자신의 부모는 “진짜 중산층이 되기 위해 아주 성실했던 이들이었다”고 말했다.(The Comic Journal, 2013.3.7) 정작 자신은 게으른 학생이었다는 얘기를 하다가 나온 얘기였다. 그는 5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학업에는 별 재능을 보이지 못했고 수업에 충실하기보다는 빈둥거리며 몽상을 즐기는 데 더 열성이어서 자주 꾸중을 듣곤 했지만, 부모는 늘 그의 편이었다고 ‘Texas Monthly’와의 2000년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13살 무렵 어머니의 권유로 산안토니오의 한 아트스쿨에 등록, 그림을 배운다. “누드화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숨이 막힐 정도로 겁이 났지만 학교에서는 한동안 엄청난 영웅이 됐죠.”(뉴욕타임즈, 2014.6.20) 그는 회화보다는 스케치, 특히 카툰에 흥미를 느꼈던 듯하다. 텍사스주립대에 사회과학 전공으로 진학한 뒤에도 대학 학보에 카툰을 연재했다. “단과대 학장이 거의 매 컷을 검열했고, 일부 장면을 지우곤 했어요. 대개는 음주와 관련된 거였죠.”(더 코믹 저널) 그는 2년간의 군 복무 후 복학, 대학원을 준비하며 대학 부설 청소년 재활센터의 매니저로 약 6년간 일했다. 그러면서도 카툰은 끊임없이 그려 잡지에 투고했다. 그의 작품이 처음 팔린 것은 1962년 ‘뉴요커’였다. 하지만 연애와 관련된 그렇고 그런 컷이었고 별 반향은 없었던 듯하다. 그가 ‘뉴요커’의 전속 카투니스트가 되는 건 그로부터 8년 뒤다.

그의 첫 직장은 세계적인 카드 업체 홀마크(Hallmark)사(1964년)였다. 그의 바람은 그림이었겠지만 발령받은 부서는 편집, 특히 글 쪽이었다. 래피도그래프(그림 펜의 일종)가 갓 출시되던 때였고, 그는 그 펜으로 집에서고 회사에서고 틈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 회사의 한 동료가 그의 그림을 보고 자신이 작업하던 한 시인의 팸플릿에 삽화를 그려달라고 요청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비공식적인 부탁이었고, 개인 시간을 쪼개서 해야 했어요. 하지만 했죠. 그러다 내 부서에서 문제가 됐고…, 당시 홀마크사는 그 정도로 관료주의적이었어요.”

69년 그는 줄기차게 작품을 응모했던 ‘The Saturday Evening Post’에서 연락을 받고 꿈에 그리던 카투니스트가 되지만 채 1년도 안 돼 신문이 페업한다. 그는 가족과 함께 캔자스시티로 이사, 다양한 잡지에 카툰을 투고하며 경제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힘겹게 산다.이혼까지 하게 된다. 이듬해인 70년 뉴요커의 카투니스트가 될 때 그를 괴롭힌 건 경제적 어려움이나 이혼의 상처보다 정치, 특히 베트남전의 광풍이었다고 한다. 열성적인 반전주의자인 그는 베트남전을 끔찍한 실수라 여겼고, 72년 공화당 아성인 지역구에서 민주당 하원의원 후보로 나서 공천을 받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후보를 중도에 사퇴한다. 코믹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선거 캠페인 중에 내가 협력하길 원치 않는 부류의 사람들과 그들(민주당 선거 캠프 인사들)이 어떤 계약을 맺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난 못하겠다’고 했죠. 한 친구는 ‘(정치를 하려면) 바보 같은 짓도 때로는 참아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내 생각엔 난센스였어요.” 바소티의 카툰 중에는 그의 짧은 정치경험이 반영된 듯한 작품들이 더러 있는데, 예컨대 국왕이 전화를 붙들고 이렇게 말하는 그림(#3)도 있다. “완전히 썩었어- 너도?(Corrupted absolutely ? and you?)”그의 생애에서 대외적으로 가장 격렬했던, 30대 말 40대 초 시절이었다.

86년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 뒤 홍보수석에 패트릭 뷰캐넌을 임명한 직후였다.뷰캐넌은 바소티가 그린 자신의 캐리커처를 공식 캐릭터로 쓰고 싶다며, 백악관 로고가 새겨진 편지로 요청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카투니스트로서는 명예로운 일이었겠지만, 바소티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물론 그는 생애 내내 민주당 지지자이기도 했지만, 거절 이유는 달랐다. 시카고 트리뷴 기자에게 그는 “정치인이란 당신이 뭔가를 공짜로 주면 절대 당신을 존중하지 않는 족속들이다. 그들이 존중하는 건 ‘거래’다”라고 빈정거렸다고 한다.(The Kansas City Star, 2014.6.17)

캔자스시티에 살면서 그는 매주 10~15컷의 카툰 아이디어를 뉴요커의 편집장에게 보내 협의한 뒤 작품을 선정하곤 했다. 작품을 그릴 땐 먼저 연필로 그리고 선이 ‘확정’되면 잉크로 마무리했다. 그에게 ‘확정’이란 더 이상 단순해질 수 없을 때까지 선과 글을 줄인 뒤 남는 최소한을 의미했다. 그렇게 몇 가닥의 선들로 그는 법정, 고성(古城), 기업 이사회장, 병원 진료실, 천국 등을 완벽하게 묘사했고, 왕과 영주와 신과 마피아와 거지와 자본가를 그 무대에 소환했고, 사랑과 죽음과 분노와 증오와 행복을 표현했다. 그렇게 세계와 삶을, 현실과 비현실을 담아 냈다.

그 모든 과정을 그는 ‘증류(distilling)’라고 표현했다. “캡션과 그림 모두를 나는 증류합니다. 극한까지 증류한 뒤 남는 최소한의 것들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표현될 때 나는 무척 기쁩니다. 의사든, 악마 같은 사업가든 뭐든 마찬가지예요. 중세 회화에서는 덜 중요한 것들은 작게 그렸어요. 그것처럼 착취당하는 이를 좀 작게 그리면 되죠. 그런 단순한 방식이 좋아요. 그렇게 단순화하면 상황 자체도 좀더 추상화할 수 있어요.”그는 작품을 단순화함으로써 넓어지는 시간적 공간적 보편성과 상징성을 추상화라고 했고, 독자들은 그 추상의 이미지들을 삶의 디테일로 끌어안았다. 한 신(神)이 구름 위에서 인간 세계를 내려다보며 다른 신에게 “자 보세요. 만일 우리가 벼락이 아니라 돈다발을 던지면 어떤 난리가 날지 알 만하죠?”라고 묻는 작품이 그런 예일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코믹 리프 기자에게 뉴요커의 전 카투니스트인 로즈 체스트는 “바소티는 언제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고 했고, 현 카투니스트 데이비드 시프레스는 “여백의 아름다움과 선의 단순함으로 표현되는 그의 스타일에는 적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시사적인 문제 못지않게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과 한계를 자주 이야기했고, 순수하게 독자를 웃겨주기 위한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뉴요커의 카툰 에디터인 로버트 맨코프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유머 자체에 대해 그의 자주, 심오한 어조로 말하곤 했다. 예컨대 그는 유머가 엄격한 이성이 결코 납득할 수 없는 진실의 한 형태라고 했다. 유머러스하다고 진실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거였다”고 말했다.

특정 신분의 등장인물을 통해 말하기 애매한 것들을 얘기하고자 할 때, 혹은 유머든 인간성이든 바소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그는 동물이나 사물, 심지어 파스타 가락을 자신의 페르소나로 등장시키곤 했다. 특히 개(강아지)는 그의 작품 주인공 가운데 가장 사랑 받은 화자 가운데 하나였다.

#4 강아지 한 마리가 빈 밥그릇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앉아 있다. 그림 위에는 ‘믿음(Faith)’이라는 단어 하나가 놓여 있다.

#5 청진기를 건 강아지가 차트에 뭔가를 적고 있고 병상에는 다른 강아지가 침울한 표정으로 누워있다. “그들이 내 밥그릇을 치워버렸어.(They Moved My Bowl.)”

#6 죽어 천국에 간 남자 앞으로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온다. 신이 이렇게 말한다. “보자, 당신이 리틀 바비로군. 렉스야, 네가 50년간 기다리던 친구가 왔다.”

그는 청년시절 자신이 사랑했던 닥스훈트 종 개를 모델로 강아지를 그렸는데, 스누피의 작가 찰스 슐츠(1922~2000)는 어느 날 자신의 닉네임 ‘스파키’라는 서명을 단 편지를 보내 “내 생각에 당신의 작은 개는 요즘 카툰에 등장하는 개 가운데 가장 재미난 개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린 레브라도 리트리버처럼 순한 얼굴의, 이름도 없는 그의 개 캐릭터는 90년 영국의 문구회사인 ‘나이스데이’에 팔려, ‘나이스데이 퍼피’라는 이름으로 문구 포장지와 홍보물, 광고 모델로 활약 중이다. 영국 체신당국은 96년 세계의 카투니스트 5명을 선정해 모두 10장의 시리즈 우표를 제작했는데, 그 가운데 3장이 미국 작가인 바소티의 작품이었고, 나이스데이 퍼피도 물론 포함됐다.

그의 지인들은 그가 수줍음을 타는 편이었고 이런저런 지역 모임이나 예술 행사에 나서는 것도 꺼렸지만, 도서관 건립이나 빈민구제 기금 모금 활동 같은 데에는 열성적이었고 작품도 많이 기부했다고 말했다.(kansascity.com, 2014.6.17)

#7 슬픈 얼굴의 서커스 광대가 전화기로 누군가와(아마도 정신과 의사와) 통화하는 중이다. “더 나은 약은 뭔가요?(What’s the next best medicine?)”

바소티는 지난해 3월 뇌암 판정을 받고 수술과 약물, 방사능치료를 받으며 투병하다 35년 함께 산 두 번째 아내 라모스와 자녀들에 둘러싸인 채 자신의 집에서 숨을 거뒀다. ‘뉴요커’ 카툰 편집장 맨코프는 바소티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기 직전까지도 의사에게 ‘손 떨림이라도 진정시켜 달라’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라모스의 말을 NPR과의 인터뷰에서 전하며(2014.6.18), “절망적인 질병과 싸우면서도 그는 자신의 위트와 유머, 그리고 인간성으로 우리의 삶을 밝히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워싱턴포스트)

“카툰이 우스워 보일지(antic) 모릅니다. 중후한 예술이 아닌 건 맞죠. 하지만 카툰에는 카툰으로서 지녀야 할 두려우리만치 분명한 진정성(integrity)이 있습니다. 만일 없다면, 있게 해야 합니다.”그의 카툰을 오래 보다 보면 얻게 되는 현상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는 어떤 관점, 혹은 유머의 필터로 걸러진 인간과 공동체의 다채로운 진실들이 그가 말한 진정성일지 모른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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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의 카툰 저작권 에이전시인 ‘카툰뱅크’(https://www.cartoonbank.com)에 접속하면 기사에서 설명한 작품들을 열람할 수 있다.

1. TCB-123842 2. TCB-122212 3. TCB-23814 4. TCB-41995 5. TCB-23813

6. http://tumblr.tastefullyoffensive.com/post/36654008473/rex#.U87javl_vAg 7.TCB-2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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