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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정치권 "왕의 지위, 어찌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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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정치권 "왕의 지위, 어찌하오리까"

입력
2014.07.2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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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팔순을 맞은 아키히토 일본 일왕부부가 황궁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팔순을 맞은 아키히토 일본 일왕부부가 황궁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때 일본 최고권력의 상징이던 일왕은 스스로 일으킨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이후 지위가 격하했다. 일본제국헌법에서는 일왕을 육해공군을 통수하는 최고권력자이자 대원수 폐하로 표기했으나, 현행 헌법에서 일왕은 국가와 국민화합의 상징으로, 정치성을 완전 배제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죽어서 신이 된다”는 기존 일왕의 개념을 스스로 깨뜨리고 자신도 한 인간이라고 선언한 적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내에서 일왕에 부여되는 존재적 의미는 단순한 상징 이상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왕의 위치를 두고 일본 정치권이 고민했던 흔적이 드러난 외교문서가 공개돼 관심이 되고 있다.

일본 언론이 25일 공개한 1971년 5월 10일자 외교문서에 따르면 당시 쇼와 일왕이 그 해 9월 유럽순방을 앞두고 여권을 휴대해야 할 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빚어졌다. 일왕이 민간인 신분이기는 하지만 외무장관 명의로 발급하는 여권을 휴대한 채 해외 여행에 나서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재위중인 일왕의 사상 최초의 외유인 만큼 민감한 사안이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당시 여권에 아이치 기이치 외무장관 명의로 “일본 국민인 이 소지인의 여행에 지장이 없도록 해달라”는 요청 문구를 명시했다. 하지만 외무성 담당자는 “(여권을)휴대하지 않고 여행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전통적인 국민 감정에서 볼 때 천황(일왕의 일본식 명칭) 부부가 외무장관이 발급하는 여권을 휴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헌법으로 정해진 국가의 상징인 일왕이 일반 국민과 같은 여권을 소지하고 입국관리와 비자 절차를 거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일왕은 이해 9월27일부터 10월14일까지 여권 없이 벨기에, 영국, 서독, 덴마크,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등 유럽 7개국을 순방했다.

일왕은 유럽순방기간 미국을 방문하는 안도 거론됐으나 야당이 반발을 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일왕은 지금도 여권없이 해외 여행을 하고 있다. 반면 왕세자부부를 비롯, 왕족들의 해외 여행에는 외교여권을 발급하고 있다.

한-일 원수 2천만년만의 첫 악수. 지난 1984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영빈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히로히토 일왕(쇼와 일왕)에게 다가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일 원수 2천만년만의 첫 악수. 지난 1984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영빈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히로히토 일왕(쇼와 일왕)에게 다가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쇼와 일왕이 네덜란드 방문 당시 일본군 포로 처우를 두고 네덜란드내에 반일 감정이 악화했던 내용도 공개됐다.

주 네덜란드대사가 아이치 외무장관에게 보낸 1971년 4월 극비 전문에는 “(일왕이 네덜란드 방문시) 현지에서 반대 시위가 있게 되면 일본 신문에 크게 보도될 것”이라며 방문의 역효과를 우려하는 심경을 토로했다.

실제로 쇼와 일왕은 1971년 10월 네덜란드 당시 시민들이 길가에서 일왕이 탄 차에 보온병을 던지는 등 항의 운동이 발생, 네덜란드 대사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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