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평가-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
토니 주트 지음, 조행복 옮김
열린책들 발행ㆍ616쪽ㆍ2만8,000원
英역사학자 토니 주트 칼럼 모음집
불의와 불의를 눈감는 불의까지 비판
"우리는 과거를 너무 쉽게 잊어 과거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해"
먼저 한 가지 질문. “완고하게 자신들 만의 독특함에 대한 자신감에 빠져 있고, 아무도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누구나 자신들에 반대한다고 확신하고, 상처 입은 자존심으로 가득하며, 쉽게 분노하는 나라”, 어디일까.
힌트 한가지. “진짜 희생자는, 지금 널리 인정되듯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실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제 유대인을 대신하여 박해 받는 소수 민족, 공격에 취약하고 굴욕을 당한, 나라 없는 소수 민족의 유일한 상징이 되었다.”
그렇다. 앞선 질문의 답은 이스라엘이다. 적어도 영국의 진보 역사학자, 토니 주트에게는 말이다. 어린이를 포함한 7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최근의 가자지구 공습 때문이 아니다. 주트가 타계하기 4년 전인 2006년, 이스라엘의 자유주의 일간지 ‘하레츠’의 청탁을 받고 기고한 글이다. 이스라엘 건국 58주년에 즈음해 발행하는 특별호에 싣기 위한 글이었지만 늘 그랬듯, 주트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날 마초이자 희생자라는 이스라엘의 국민적 내러티브는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는 그저 기괴하게 비칠 뿐이며 일종의 집단적 인지장애의 증거”라고 일갈한다.
미국의 ‘미필적 고의’에 대한 책임 추궁에도 거리낌이 없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공생 관계로, 비판자들의 눈에는 계속 더 친밀해지는 관계로 점점 더 강하게 결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로써 두 나라의 행태는 국외에서 공동으로 받는 나쁜 평판을 더욱 악화시킨다.”
안타까운 건 글이 발표된 지 8년이 지났는데도 역사가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주트가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여러 매체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신간 ‘재평가-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열린책들)이 어쩌면 지금 더욱 의미가 있는 이유다. 주트는 “우리가 과거를 너무 쉽게 잊어 과거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고 강조하며 저명 철학자, 역사가, 프랑스, 영국, 벨기에, 미국 등을 도마 위에 올린다. 사실에 근거한 설득력 있는 식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의 목소리는 불의만 향하지 않는다. 불의에 눈감는 또다른 불의까지 포괄한다. 2006년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실린 그의 칼럼은 네 개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부당한 침략전쟁에 입 닫은 미국의 지식인들을 겨냥한 것이다. 그리곤 “오늘날 미국의 자유주의는 감히 이름조차 내밀지 못하는 정치 운동이 돼버렸고, 자칭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은 다른 일로 바쁘다”며 “이들은 빠르게 서비스 계급으로 바뀌고 있다”고 꼬집는다. 미국 철학계의 원로라는 진 베스키 엘시테인, 마이클 월저 등 실명을 거론한 비판도 마다 않는다. ‘양들의 침묵’이란 이 칼럼 제목에 얼굴이 화끈거렸을 이가 한 둘이 아니었을 법 하다.
‘제3의 길’을 내세운 영국의 전 총리 토니 블레어를 향해선 “블레어의 노동당은 단연 새로운 정당이었다. 젠더는 빈번히 언급했지만 계급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며 인기몰이에 급급한 행보를 비꼰다. 또 “영국 철도의 민영화는 지독한 웃음거리”라며 “철도 이용자들은 서구 세계에서 가장 나쁜 축에 드는 철도에 가장 비싼 요금과 납세자로서 국가가 철도를 소유했을 때 지불하던 것만큼 많은 보조금을 지불한다”고 비판한다. 블레어가 두 번째 총선에 승리한 직후인 2001년 7월에 쓴 칼럼이다. 토니 주트는 “영국인들은 정말로 이상했다. (중략)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불행을 남의 불행처럼 기뻐할 수 있는 유일한 국민”이라며 대중의 선택에 절망하기도 한다.
혹독한 비판에 그는 늘 논쟁을 몰고 다녔다. 그런데도 이 피곤한 일을 역사가가 왜 해야 하는 것일까. 그는 이렇게 적는다. “역사가의 자리는 매우 중요하지만 모호하다. 밀란 쿤데라의 말을 빌리자면, 단순한 기억하기는 결국 일종의 망각이며, 역사가는 적어도 잘못된 기억을 교정할 책임이 있다.”(1998년 12월 ‘뉴욕 리뷰 오브 북스’) 행동하는 지식인이 절실한 2014년 한국 사회에 그가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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