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에 대법원은 미래에 받을 퇴직금ㆍ연금도 이혼할 경우 배우자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배우자가 받을 위자료에는 다른 배우자가 향후 받을 퇴직금과 연금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의미다. 주로 여성인 위자료를 받는 배우자의 재산 형성 기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금의 대상에는 국민연금뿐 아니라 군인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이 포함되는 것은 말할 것 없다.
대법원이 19년만에 바꾼 이 재산분할방식은 황혼이혼 할 경우 주로 가사를 돌봐온 여성에게 유리한 판결임에 틀림없다. 사회문화적으로 ‘현모양처’를 강요 받아 집안에서 숨죽여 살아온 여성으로서는 반길만한 판결임에 분명하다. 이 때문에 이 판결 이후 황혼이혼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과연 이 판결로 황혼이혼이 늘어날까. “이혼을 하고 싶어도 남편이 퇴직할 때까지 참고 사는 여성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번 판결로 이혼율이 급증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공동재산이 상대적으로 많은 배우자 처지에서는 이혼하면 일반 재산뿐 아니라 미래 퇴직금ㆍ연금까지 추가로 나눠줘야 하기 때문에 이혼을 하지 않거나 최대한 미루려 할 것”이라고 추측도 한다.
꼭 비슷한 사례라고는 할 수 없지만 향후 황혼이혼이 늘어날 것인지 가늠할만한 잣대가 있다. 일본 사례다. 일본은 연금분할제도를 개선해 2007년 4월 이후에 이혼하는 부부의 경우 결혼생활 중 남편이 낸 보험료에 해당하는 연금을 부부가 분할할 수 있도록 했다. 그때까지 연금납입을 하지 않고 전업주부로 가사를 돌봐온 일본 여성이 이혼 후에 받을 수 있는 것은 노령기초연금밖에 없었다.
마침 이 제도가 도입될 때는 일본의 전후 베이비붐 세대(단카이 세대)가 우루루 은퇴를 맞는 시기였다. 남성가부장제에 억눌려 살아온 주부들이 퇴직금이나 연금을 받게 되는 남편을 상대로 잇따라 이혼 소송을 제기해 자유롭고 독립적인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됐을까. 전혀 아니다. 일본에서도 사회 풍조가 바뀌면서 황혼이혼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였다. 일본은 한국 못지 않은 가부장제 사회여서 연금분할제도가 도입되면서 아이를 키워놓고 반드시 헤어지겠다고 속으로 결심하고 있었을 여성도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새 연금분할제도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여성들이 결단을 내리는데 불 지필만도 했다.
하지만 2007년 제도가 바뀐 이후 이혼율이 특별히 증가하지는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제도가 도입되고 1년 뒤에 시작된 개정 연금제도가 그해 4월 이후 납부한 보험료로 받는 연금을 대상으로 분할이 가능하도록 한 점이다. 바로 이혼을 해서는 이득 볼 게 별로 없다. 헤어져 살 경우 각각 벌어 각각 살림을 해야 하는데, 이는 둘이 한 집에 살 경우 보다 소비가 이중이 되는 부담이 있다는 해석도 있다. 갈수록 늦게 결혼하는 추세이다 보니 연금을 수령할 나이가 돼도 자녀들이 대학을 다니고 있다든지 해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마무리 되지 않은 것도 정년퇴직-연금수령과 함께 황혼 이혼이 급증하지 않은 이유로 거론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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