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벽장에 은신·현금 발견, 檢 결정적 정보 독점 불협화음
"돈 없이 도주 가능성 알았다면 경찰, 야산 등 대거 투입했을 것"
서울과 지방 검거팀끼리도 정보 공유 않고 오판으로 일관
검경은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에 대한 수사를 벌여온 지난 3개월간 크고 작은 오판을 하거나 실수를 저질렀다. 특히 검찰의 정보 독점이 총체적 부실 수사를 불러 온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유씨 일가 비리를 수사 중인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은 23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공개했다. 전남 순천 송치재 인근 ‘숲 속의 추억’ 별장에서 유씨를 수행하다 구속된 측근 신모(34ㆍ여)로부터 “5월 25일 급습 당시 유씨가 통나무 벽 은신처 안에 숨어 있었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이튿날 이 곳에서 “현금(8억3,000만원)과 미화(16만달러)를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이 신씨의 진술을 지난달 26일 확보하고도 한 달 가까이 숨긴 것은 유씨 검거에 지장을 초래한 결정적 변수가 됐다. 경찰은 돈이 버려진 사실을 공유하지 않은 부분을 뼈아프게 여기고 있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유씨 회장 수중에 돈이 없다는 것은 걸어서 도주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중요 단서”라며 “당연히 차량 검문이 아닌 인근 야산이나 밭 등으로 수색 범위를 좁히고 경찰력을 대거 투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매실밭에서 발견된 무연고 시신에 대해서도 관심을 집중해 신원확인을 더 빨리 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검찰 요청으로 지난달 3일 설치한 ‘경찰 총괄 태스크포스(TF)’조차도 기자회견을 보고서야 관련 내용을 알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지난 14일 처음으로 열린 검경 합동대책회의에서도 검찰은 핵심 정보를 철저히 숨겼다. “검경의 정보 공유는 100% 되고 있다”는 검찰의 공언이 거짓으로 확인된 셈이다.
23일 검찰의 기자회견에 대해서도 경찰이 송치재 별장을 수색하려고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고, 신씨에 대한 조사를 병행하겠다고 통보하자 부랴부랴 이뤄진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경찰이 별장을 재조사해 비밀 방의 정체와 유씨 행적이 밝혀질 경우 검찰의 거짓말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한발 먼저 발표했다는 것이다.
애초 5월 별장 압수수색 당시 보여준 검경간 불협화음은 유씨를 조속히 체포하지 못한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다. 당시 경찰은 별장 주변 수색만 맡았을 뿐, 내부 접근은 철저히 차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과장급 간부는 “범인을 찾거나 추적하는 일은 경찰이 검찰보다 전문성을 갖춘 게 사실”이라며 “경찰이 내부 수색에 참여했다면 적어도 벽을 두드려 보는 정도는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인원 128만명이 투입된 유씨 일가 검거 체계도 허점투성이였다. 검거 첫발부터 너무 늦었다. 검찰은 5월 중순 유씨 일가로 칼끝을 옮겼지만 이미 유씨와 유씨의 장남 대균(44)씨, 차남 혁기(42)씨가 국내외로 도주한 뒤였다. 4,000억원대 재산의 유씨 일가가 검찰 수사에 순순히 협조할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또한 유씨 검거팀에 참여한 한 경찰은 “검찰에서 내려 보낸 유씨 조력자들의 정보는 사진 2, 3장이 전부여서 설령 용의자와 마주쳤더라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경찰은 “경찰 내부적으로도 서울과 지방은커녕 서울 안에서도 검거팀끼리 아무런 정보 공유가 없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유씨를 잡겠다고 한 것 자체가 무리”라고 비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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