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개조론이 최근 국가혁신론으로 명칭을 바꿨다. 개조든 혁신이든 주체와 대상을 놓고 여전히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4ㆍ16 세월호 참사 이전 국가에 대해 가졌던 신뢰와 자랑스러움이 4ㆍ16 이후 많은 상처를 입었음을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국민개조나 혁신이 아닌 국가혁신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혁신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를 사회복지학의 관점에서 제안해 보려고 한다.
혁신(革新)은 묵은 것을 바꾸거나 버리는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존의 모든 것을 버리고 부정하면서 아무런 기반 없는 새 출발은 불가능하다. 2차대전 패전 직후 독일의 새로운 출발을 묘사한 ‘시간 제로’(Stunde Null)의 의미가 더욱 빛나는 것은 독일 국민에게 스며들었던 나치국가 유산을 혁신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나치시대 유산을 청산하되 정직ㆍ신용ㆍ정확으로 상징되는 ‘프러이센적 미덕’, 바이마르공화국이 시작한 사회국가(복지국가), 사회문제에 적극 대응하는 기독교 사회운동 등 독일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하는 ‘시간 제로’가 있었기에 오늘날 독일 복지국가의 모습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지속하고 무엇을 바꾸면서 국가혁신을 할 수 있을까? ‘고용없는 성장’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 구조 구축은 지속가능 대한민국의 필수조건이다. 사회서비스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으면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자영업이 더 이상 희망을 못주고, 대기업ㆍ중소기업 간 격차가 심화하고 시장은 비정규직만을 양산해낸다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한꺼번에 이뤘다는 대한민국 신화는 앞으로 세계인의 머릿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불완전 고용, 만성 실업, 소득ㆍ빈부 격차 심화를 사회서비스 분야 고용 확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 중심의 좁은 의미의 사회복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체 사회 구성원의 고용과 복지를 연계하는 새롭고 넓은 개념의 사회복지가 필요하다. 고용복지 체계 구축은 현 정권이 국민에게 했던 약속이다. 궁극적으로 가계부채만 양산하고 그 책임을 짧게는 다음 정권, 길게는 후세대가 떠맡아야 하는 소수 자산가 중심 경기 활성화 대책 등은 국민과의 약속에서 없지 않았던가? 약속대로 경제민주화를 토대로 고용복지 체계를 구축하고 사회서비스 분야를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고용복지 체계 구축과 사회서비스 고용 확대의 첫발을 내딛기 위해 사회서비스 전달체계 분야에서 국가혁신을 해야 한다. 혁신이라는 용어를 썼으면 그에 걸맞으면서 장기적으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근본적 제안을 내놓고 국민의 공감을 구하자. 사회복지의 중요한 영역에 고용ㆍ소득보장, 의료보장, 주거보장, 그리고 사회서비스가 있다. 취업활동을 통해 돈을 벌고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언제든지 돌아가서 쉴 수 있는 집이 있으며 상담ㆍ서비스 연계 등 지원을 받는다면 그것이 사회복지의 실천이자 완성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복지를 국가가 효율적으로 조직하지 못하고, 담당부처 간 칸막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서비스 사각지대와 중복의 공존, 재정 낭비, 더 나아가 서비스 제공 자체를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가 각자 고용 확대를 위한 사업을 한다. 고령실업자, 자활사업 대상자, 경력단절여성, 폭력피해여성 등은 지역에서 ‘고용센터’ ‘자활센터’ ‘새일센터’ ‘자활지원센터’ 등을 오락가락하면서 서비스를 받았다 말았다 한다. 가뜩이나 수가 적은 지자체 사회복지공무원은 근로능력자와 무능력자가 섞여 있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부정 수급자를 가려내야 하는 부담을 혼자 갖는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한 국가혁신을 논의하자.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의 발전적 해체와 통합을 생각해 보자. 고용과 소득ㆍ주거보장은 가칭 고용사회부가, 보건ㆍ의료보장은 건강보건부가, 대인 사회서비스는 사회서비스부가 전담하는 국가혁신은 어떤가? 장기적 과제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지역사회에서는 중앙부처 간 칸막이의 적폐를 지적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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