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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특검 수사기록도 보지 않고… 허위사실 적시한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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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특검 수사기록도 보지 않고… 허위사실 적시한 판결문

입력
2014.07.24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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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한국일보 기자들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23일 한국일보는 패소 판결을 받았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10월 황 장관이 과거 부장검사 시절 삼성 떡값을 받았다는 의혹을 보도한 데 대해 황 장관이 명예훼손 혐의로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내면서 법정싸움이 진행돼 왔다. 금품을 직접 전달했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한 기사였기에 패소 판결은 의외였다.

그러나 기자로서 스스로 간과했던 허점을 재판부가 지적했을 것이라 믿고 겸허히 판결문을 읽었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판결문에서 보도 내용이 허위라고 판단한 근거 자체가 사실과 다르거나 확인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 배호근)는 우선 김 변호사가 여러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상품권을 준 시기, 상품권 액수를 진술한 내용이 엇갈려 일관성이 없어 사실로 믿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정확한 날짜와 액수를 기억하지 못할 뿐 “1999년 상품권을 줬다”고 일관되게 말해 왔다. ‘일관성’의 판단기준이 기자들이 너무 넓은 것일까, 판사가 너무 좁은 것일까.

판결문은 김 변호사가 줬다는 금품의 종류도 일관성이 없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상품권이라고 했는데 다른 인터뷰에서는 의류시착권(교환권)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류시착권은 상품권의 일종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

또 판결문은 한국일보가 상품권 수수 사실을 확인한 ‘복수의 사정당국 관계자’에 대해 아무런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일보는 취재원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켜야 했고, 현직 공직자들이 포함돼 신원을 밝히지 못한다고 설명했음에도 재판부는 마치 아예 취재를 하지 않은 것과 같은 수준으로 취급했다.

판결문에는 “(한국일보가) 조준웅 등 삼성특검 관계자에 대한 사실 확인 절차 없이 기사를 보도했다”고 돼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특검 핵심 관계자에게 확인 통화를 한 것이 나였다. 기사에도 그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당시 특검 관계자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요약돼 있지만 그의 뉘앙스는 충분히 사실을 인정하는 정황으로 받아들일 만했다. 판사가 기사를 눈여겨 보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재판과정에서 특검 관계자를 취재했는지 확인절차를 거쳤다면 이런 허위사실을 적시한 판결문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판사가 묻지 않은 것까지 피고가 알아서 증거를 제출해야만 한다면 국민들이 사법부에 대한 존경을 마음 속에서 모두 지워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더욱이 재판부는 비공개로 진행된 삼성특검 수사를 거쳐 무혐의 처분됐다는 황 장관측 주장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국일보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삼성특검 수사기록을 보고 판단하자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한국일보는 법원의 다른 재판부에 김 변호사의 특검 진술조서 공개를 청구해 준항고심에서 공개 결정을 받았고, 현재 재항고심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한국일보 보도가 사실인지를 판단할 핵심인 삼성특검 수사기록을 보지 않은 채 한국일보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판결문은 김 변호사에 대한 취재가 보도 전날에야 이뤄졌다고 역시 틀린 사실을 적시했지만 이는 한국일보가 날짜를 오기해 자료를 제출한 탓이었다. 김 변호사에 대한 취재는 보도보다 수일 전부터 몇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공직자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언론의 핵심 사명이다. 특정 보도에 대해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충분하다면 법원도 명예훼손으로 단정하지 않는 이유다. 그러니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 자체를 틀리게 파악했다면 그 판결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소송 당사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판결이 안 나오면 사법부를 비난하는데, 법원이 판결하면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풍토가 조성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왔다. 일부 믿음을 주지 못하는 판결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판사들은 공정함을 위해 노력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직접 소송에 관여해 판결을 받아보니 법원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나마 기자는 심리 과정의 부당한 점을 이처럼 지면에라도 실을 수 있지만, 수많은 민사소송의 당사자들은 그저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진희 사회부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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