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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떡값

입력
2014.07.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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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떡이 유난히 많이 나온다. 부모(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잘 되는 놈은 엎어져도 떡 함지, 흉년의 떡도 많이 나면 싸다…. 떡이 명절에나 겨우 맛보는 귀한 음식이던 시절 생겨난 말들이라 모두 횡재나 이익, 귀한 물건의 뜻으로 쓰였다. 그 떡이 요즘은 ‘떡값’이란 관용어로 더 많이 회자된다. 명절 보너스를 일컫던 것이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바치는 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표준국어대사전)로 진화했다. 조상님들이 통탄할 일이다.

▦ 명명(命名)의 힘은 때로 아주 나쁘게 발현된다. 말이 떡값이지 부정한 뒷돈이 명백한데도, ‘명절에 돈 몇 푼 집어준 것 갖고 뭘 그리 야박하게 구냐’는 그릇된 온정주의가 퍼져있다. 실제 시도 때도 없이 불거진 떡값 사건은 유야무야로 끝났다. 법의 한계도 있다. 우리 형법상 뇌물죄는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모두 입증돼야 하므로 처벌이 쉽지 않다. 반면 미국 등에서는 대가성을 요구하는 뇌물죄(bribery) 외에 불법사례수수죄(illegal gratuity)를 둬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행위도 처벌하고 있다.

▦ 이처럼 너무 성긴 법의 그물을 더 촘촘하게 짜자는 것이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의 취지다.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을 불문하고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하면 처벌하도록 한 초안을 만든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김두식 경북대 교수와의 대담집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함을 합리화할 수 있는 선, 작은 부분에서 유혹에 넘어가요. 그렇게 사소한 부정행위에 발을 적시면 김광준 검사 사건 같은 큰 비리에도 점점 무감각해지는 거예요.”

▦ 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 사건(살인교사)의 피살자인 재력가 송모씨의 비밀장부에서 한 검사에게 총 1,780만원을 건넸다는 기록이 나왔다. 10차례에 걸쳐 줬다니 전형적인 떡값의 모양새다. 검찰이 뒤늦게 수사에 나섰지만, 처벌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엄격한 대가성의 잣대가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와 만나 결국 ‘제 식구 감싸기’로 끝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떡값이 ‘그땐 그랬지’라는 추억 속의 옛말이 될 날이 과연 올까.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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