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붙이를 잃은 아버지 어머니의 무릎과 발목마다 파스가 붙었다. 노란 우비를 입은 부모들이 세찬 장맛비를 맞으며 걷고 또 걸은 거리는 약 40㎞. 이틀 동안 끼니를 거른 채 100리를 헤쳐온 행진단을 시민들은 따뜻하게 보듬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180여명이 참사 100일을 맞은 24일 ‘1박2일 100리 행진’을 마쳤다. 전날 경기 안산시 정부합동분향소에서 도보행진을 시작한 유가족들은 광명시민체육관에서 쪽잠을 잔 뒤 이날 오전 9시쯤 다시 발을 떼 서울 여의도 국회와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유가족 20여명이 행진 이튿날 추가로 동참했으며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소속 시민단체 회원 400여명이 전날에 이어 함께 했다.
가족들은 쓰러질 듯 힘겹게 걸으면서도 진실 규명을 위한 의지는 놓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지지부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단원고 고 안형준(17)군의 아버지 재용(52)씨는 “100일이 흘렀는데 변한 게 없다. 쓰러질 것 같은데 우리 애가 왜 죽었는지 알고 싶어서 나는 행진한다. 배상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고 김주아(17)양의 아버지 찬성(54)씨는 “국가가 진실을 안 밝히면 가장 피해를 입는 건 국민”이라며 “천만다행으로 여야가 합의해 특별법이 통과되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털어놨다.
고 강혁(17)군의 아버지 대현(45)씨는 딸(21)과 함께 묵묵히 걸었다. 그는 27년간 운영하던 족발 가게 문을 닫았다. 아들이 억울하지 않게 악착같이 의혹을 풀겠다는 이유에서다. 아내는 국회에서 단식하다가 3일 만에 쓰러져 병원에 있다. 그는 “아들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애비인데, 사람들에게 점차 잊혀 이대로 끝날 까봐 두렵다”며 울먹였다.
유가족들은 서울 영등포구의 한 백화점 부근에서 빵과 물로 허기를 달랜 뒤 국회로 발걸음을 옮겨 짧게는 3일, 길게는 11일째 단식 중인 유가족 13명을 만났다. 이들은 이어 서울광장에 도착해 100일 추모 시 낭송ㆍ음악회 ‘네 눈물을 기억하라’에 참석했다. 한국작가회의 등이 공동주최한 이날 행사에서는 시인 강은교, 가수 김장훈 등 문인과 음악인 15명, 시민 7,000여명(경찰 추산)이 한데 어울려 참사의 의미를 되새겼다.
유가족들은 행사 후 최종 목적지인 광화문광장에서 11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유가족 3명과 동조 단식 중인 시민단체 회원 10여명을 위로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김진주기자 pearlkim7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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