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전 회장의 사체 발견 과정에서 수사당국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났다. 유씨의 도피부터 변사체 발견까지 검찰과 경찰의 헛발질을 정리했다.
1. 코 앞에 두고 놓친 5월 25일(검찰)
5월 25일 검찰은 전남 순천 송치재 휴게소 인근 별장 에서 유병언을 봤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검거팀을 급파했다. 현장에서 2시간이 넘게 수색을 벌인 검찰은 유씨를 발견하지 못했고 대신 여비서 신모(34)씨를 현장에서 검거했다. 검거 당시 신씨는 묵비권을 행사하다 검거 3일 뒤에야 “5월 25일 새벽 잠을 자고 있는데 인기척이 나서 눈을 떠보니 성명 불상의 남자가 유씨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시 잠 들었다가 깨보니 유씨가 사라지고 없었다”고 거짓진술했다. 신씨는 이로부터 약 한 달 뒤인 지난 달 26일 “25일 오후 4시 수사관들이 별장 후문을 열려고 하는 소리가 들려 유씨를 2층 통나무 벽 안에 있는 은신처(비밀 방)로 급히 피신시켰다. 유씨는 수사관들이 수색을 마칠 때까지 그 은신처 안에 숨어 있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이 진술을 확보한 검찰은 다음 날 수색을 통해 은신처 공간을 확인했고 현금 8억3천만원과 미화 16만 달러가 든 여행가방을 확보했다. 수색과정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실책을 스스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뿐 아니다. 당시 검거팀이 최초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25일 오후 4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 받아 산장 내부로 진입한 시각은 9시 30분이다. 내부 진입까지 5시간이 넘게 걸린 셈이다. 신씨가 유 회장을 비밀공간으로 피신시키는 데 충분한 시간을 검찰이 벌어준 꼴이 됐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수색을 벌이다 유씨가 별장에 없다고 판단한 검거팀은 별다른 조치없이 현장을 떠난다. 경찰과 정밀 수색을 벌인 26일 오후 3시까지 현장보존이나 추가수색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또 다른 실수다. 유씨는 이사이 별장을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25일 검찰의 수색은 전후 모든 과정에서 엉망진창이었던 셈이다.
2.500m 앞까지 갔었던 5월 22일(검찰)
이에 앞서 검찰은 22일 별장에서 500m거리인 송치재휴게소와 송치골가든을 급습했다. 탐문수사 과정에서 수사관은 송치골가든을 운영하는 변모씨에게 별장을 가르키며 어떤 곳이냐고 물었다. 변씨는 “염소를 키우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검찰은 변씨의 말만 믿고 별장을 수색하지 않았다. 구원파 신도인 변씨는 25일 유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검거된다.
유씨가 5월 초부터 휴게소 인근 별장에서 은신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탐문과 수색을 소홀히 한 검찰의 안일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3. 수색, 검문의 의미는? 5월 25일부터 6월 초(검경)
검찰은 5월 29일 유씨가 도피하는 데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한 EF소나타 차량을 전주에서 발견한다. 언론은 포위망에 구멍이 뚫린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지만 검찰은 유씨가 순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확신했다. 검찰은 유씨가 송치재휴게소 인근에서 은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검문 뿐 아니라 그 주변에 대한 수색도 강화했어야 했다. 산장 주변에 대한 수색이 소홀했다는 것은 유씨의 시신이 산장에서 2.5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검찰은 검거팀의 인력을 보강하면서까지 힘을 집중했지만 헛발질만 해댔다. 6월 8일 검찰은 유씨가 해남 목포로 도주했다는 정황을 확보했다면서 검거작전의 방향을 튼다. 해당 지역의 구원파 관련 시설과 신도집을 압수수색했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순천에서 목포쪽으로 수사당국의 시선을 돌리게 한 것이 구원파의 교란작전으로 판명나면서 또 다시 당국은 헛물만 켠 꼴이 됐다.
4. 화려한 액션 6월 11일(검경)
6월 11일 4천여명의 경력이 금수원에 투입된다. 유씨가 금수원에 몸을 숨길 가능성이 있고 도주 조력자를 체포한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두 엄마’로 불렸던 조력자 체포에 실패했고 관련 단서도 확보하지 못했다. 유씨가 그곳에 없다는 사실 확인이 1박 2일간의 수색에서 가장 큰 성과였다.
5. 노숙인의 변사 6월 12일(경찰)
지난 달 12일 유씨가 은신했던 별장으로부터 2.5km 떨어진 밭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당시 시신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부패해 거의 백골상태였다. 경찰은 노숙인의 죽음으로 단정하고 단순 변사 처리했다. 시신이 유 회장이 은신했던 곳과 가까운 곳에서 발견됐고 유류품이 구원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만 감안했더라도 수만의 경력이 우왕좌왕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6. “꼬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무엇의 꼬리? 7월 21일(검찰)
검찰은 유씨에 대한 구속영장 만료를 하루 앞두고 21일 6개월 짜리 구속영장을 발부 받는다. 검찰은 이날 “조직적인 도피 행태와 피의자에 대한 압박 필요, 검찰의 검거에 대한 의지 등 고려했다”며 영장재발부의 의미를 설명했다. 또 대검차장이 직접 나서 세월호 수사 관련 브리핑을 하며 “둘다 (추격의) 꼬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이 발언 후 약 10시간 뒤 6월 12일에 순천에서 발견된 시체가 유씨라는 보도가 나온다. 도대체 무엇의 꼬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는 것인가?
7. 폴리스 라인에서 사진 유출까지 7월 22일~23일(경찰)
22일 오전 사체를 최초로 발견해 신고한 주민이 현장에 남아있는 뼈와 머리카락을 가리키는 사진과 영상이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보도된다. 사건의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있는 증거물 훼손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경찰은 현장을 그대로 방치했다. 한 주민이 뼈를 가져가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경찰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란 말만 할 뿐이었다.
현장에 폴리스라인이 쳐지는 데까지 40일이 걸렸다. 40일간의 무능에 대해 다시 지적하지 않더라도 경찰이 사체가 유씨라는 것을 확인했다면 그 현장으로 가장 먼저 달려갔어야 했다. 하지만 현장엔 주민과 언론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경찰의 실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3일 SNS를 통해 유씨 사체 발견 당시 모습이라며 사진 한 장이 급속도로 퍼졌다. 이날 오후 이 사진이 수사당국의 수사기록 중 하나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수사의 ABC도 모른다고 비난받고 있는 검경이 수사기록 관리도 제대로 못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주영기자 wi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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