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이 외국인 참정권을 허용하는 지자체의 조례 제정을 조직적으로 막아온 것으로 드러나 시대착오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외국인 투자유치 및 외국인 노동력 활용을 통해 일본의 성장을 도모한다는 아베 신조 총리의 계획에도 역행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24일 산케이(産經)신문에 따르면 자민당은 최근 도도부현 지부연합회 다케시마 와타루(竹下亘) 조직운동본부장 명의로 “자치기본조례는 헌법이나 지자체법의 취지를 이탈하는 것”이라고 지적, “문제 있는 조례가 제정되지 않도록 적절하게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자치기본조례는 외국인의 주민 투표 참여를 허용하는 내용이 골자로, 1997년 오사카부 미노시가 ‘마을만들기 이념조례’라는 명칭으로 시행한 것이 발단이 됐다. 2009년 민주당 정권 등장과 함께 민주당 지지세력인 지자체 노조가 중심이 돼 각 지자체에 조례제정이 이뤄졌다. 총무성에 따르면 현재 300개가 넘는 지자체에서 조례를 제정했으며, 이중 30여개의 지자체가 외국인의 참정권을 허용하고 있다.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는 자치기본조례를 토대로 3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에게 주민투표권을 부여하는 주민투표조례를 제정했으며, 히로시마시는 “외국인도 주민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주민 여론을 반영, 주민투표조례를 제정 시행중이다.
자민당이 외국인 참정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향후 미군기지 이전 문제 등을 둘러싸고 지자체와 갈등이 늘어나 자칫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ㆍ釣魚島) 문제와 관련, 중국인들이 지자체 참정권을 이유로 일본 정부에 반발하는 사례 등도 예상되는 시나리오 중 하나다.
자민당은 2011년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는 등의 내용이나 제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담은 책자를 만들어 지방 조직에 주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 들어 4월까지 16개 지자체에서 새로운 조례가 제정되는 등 통제불능 상태에 접어들자 자민당이 노골적으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자민당은 이밖에 공산당 기관지 ‘신문 적기’를 구독을 권유하는 지자체 실태 파악도 지시하는 등 이념 통제에도 나섰다. 자민당 관계자는 “보수 의원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좌파의 조직적인 공작에 편승할 수 있다”며 “자민당을 지지하는 지방 의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외국인에게 국정 참여권도 아닌 지방자치 참정권마저 제약하는 시도는 국제화 시대를 역행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 때문에 일본에 영주하게 된 재일 한국ㆍ조선인 등의 정치 참여에도 제약을 줄 수 있다.
외국인의 참정권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주민투표법을 통해 일정한 거주자격이 있고 지자체의 조례가 정한 조건을 갖춘 외국인은 주민 투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2006년부터 영주권을 얻은 지 3년이 지난 외국인에게는 지방선거 투표권을 인정하고 있다.
관련 전문가는 “이런 주장은 성장한계에 도달한 일본이 외국인 유치를 통해 성장을 지속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성장전략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행위”라며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일본 특유의 정서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으로 국제적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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