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보고 하고 안하고 문제 아니다
대통령 열린 자세와 분별력이 중요
그래야 장관ㆍ참모도 처신 똑바로 해
오래 전 읽었다가 최근에 다시 보게 된 책 공격 계획(Plan of Attack). 유명한 미국 저널리스트 밥 우드워드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을 인터뷰해 그려낸 이라크 개전 과정이다. 새삼 인상 깊은 대목은 매파인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 보좌관과 비둘기파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제각각 부시 대통령을 설득하고 갈등을 빚는 장면이다. 전쟁의 명분, 유엔 안보리 결의안 추진, 이라크 IAEA 사찰 등 곳곳에서 접전이 벌어진다. 소수파인 파월은 매파가 언급할 리 없는 전쟁 이후의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전하려 부시와 두 시간 독대도 한다. 그는 할 수 있는 말은 다했다고 했다. 전쟁의 버튼을 누르는 이는 대통령이지만 과정은 참모들의 파워게임이나 다름없다.
비단 미국만이겠는가. ‘권력의 세기는 대통령과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말은 거의 정설이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모시다 장관으로 나와서 급격히 힘이 빠진 인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청와대 참모와 장관이 불화를 겪을 경우 깨지는 건 대개 야전에 있는 장관이다. 대통령을 끄는 힘은 결국 대면(對面)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당권을 잡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최근 김기춘 청와대비서실장의 거취와 관련해 “대통령이 꼭 필요하다면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지방선거 때부터 김 실장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던 그다. 궁금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 실장이 꼭 필요한 이유다. 김 실장은 ‘윗분’을 모시는 처신을 잘한다. 일흔이 넘은 고령이지만 여전히 총기가 넘친다고 한다. 주변 사람의 얘기다. 우여곡절이 있었을지언정 지난해 정권의 위기를 부른 국정원 댓글 사건의 거센 파고를 뛰어넘은 것도 그의 공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이 정부는 ‘멘붕’상태다. 인사실패 등 하는 일마다 헛발질이다. 그래서 그를 겨냥해 국정농단이라는 말이 나오고, 경질하라는 요구가 거세다. 본인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대통령 생각은 요지부동이다. 그의 경륜을 따를 자가 없어서인가. 대통령의 귀를 독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은 자연스럽다.
최근 면직된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뒷얘기는 대비된다. ‘입바른 소리’를 하다 경질됐다고 알려진 행간에 담긴 의미다. 그 중 하나로 세월호 참사 직후 열린 국무회의에서 유 전 장관이 ‘내각 총사퇴’ 얘기를 꺼냈다가 대통령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았다는 말이 전해진다. 역린을 건드렸다는 얘기다. 만약 김 실장이 그런 얘기를 했다면, 혹은 유 전 장관이 홀로 대통령을 만나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팩트와 논리가 보태져 보다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고, 듣는 대통령의 반응도 달랐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게 받아들여지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 정권의 청와대 독주, 일방주의는 유별나다. 당ㆍ청이나 정ㆍ청 관계에서 뚜렷하다. ‘청와대 2중대’니 ‘받아쓰기 내각’이니 하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당권 교체와 2기 내각, 새 청와대 참모진의 출범과 함께 이러한 구조에 변화 조짐이 보인다. 당권을 잡은 비주류 지도부의 힘인지, 신임 장관이나 참모들의 고언 때문인지 박 대통령이 대면보고, 접촉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간에는 참모들에 막혔던 것인지, 대통령 개인 편향인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소통의 시작이 생각의 전환인지, 단순히 박근혜 정부 2기 출발에 따른 일시적인 스킨십 쌓기인지도 불분명하다.
쓴 소리든, 입바른 소리든 중요한 것은 현명한 조언을 얻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면보고도 받아야 하고, 독대도 필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열린 자세와 분별력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23장 ‘아첨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군주가 아첨이라는 질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유일한 방법은 진실을 듣더라도 결코 화내지 않는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군주가 분별력이 있다면 신하도 속일 수 없고 말과 행동을 똑바로 하게 된다는 게 마키아벨리의 말이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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