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국립극장에서 여우락 페스티벌 ‘여우톡’ 공연을 했다. 여우락 페스티벌의 예술 감독인 양방언과 함께 한 토크 콘서트였다. 음악 이야기와 관객과의 대화, 그리고 연주로 이뤄진 공연이다.
연주를 준비하는 건 일상적이지만 ‘나의 음악 이야기’는 좀 다르다. 어디서부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오래 고민했다. 벌써 여섯 번 째 음반을 준비하고 있고, 10년 이상 연주자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스스로 무대와 맞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고 있는 나의 이야기.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두려움은 감추고 무대에서의 행복, 음악을 만드는 것의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나? 그러진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솔직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무대에 앉아 천천히 얘기를 시작했다. 일본에서 시작한 연주자 생활. 아무것도 몰랐고, 심지어 두려움도 몰라서 용감할 수 있었던 그때. 그리고 관객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던 순간. 그리고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서 보낸 무대 뒤에서의 수많은 노력의 시간…
무대란 참 신기한 곳이다. 화려하고 멋지다. 많은 사람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기를 꿈꾼다. 그리고 그 순간을 위해서 수십 배 수백 배의 시간 동안 혼자서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한다. 그 시간이 아무리 힘들었더라도, 일단 무대에 서면 그 모든 수고는 빛나는 기쁨이 되는 것이다.
무대에 나가기 직전, 막 뒤에서 기다리는 몇 분. 늘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엄청난 두려움이 몰려 온다. 무대는 그런 두려움을 이겨내고 오르는 곳이다. 그러나 또 그렇게 두려움을 이겨내고 올라가면 무한한 자유로움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정도의 황홀감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어제 무대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솔직하게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나의 두려움을 숨기지 않고 관객에게 고백할 수 있는 게 좋았다. 마음이 따뜻했다. 눈이 마주친 어느 관객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 공감. 어찌 보면 낯선 사람인 관객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등을 토닥여주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문득 “고맙습니다” 라고 했다.
이야기 중간 중간 세 곡을 연주 했다. ‘그리움은 별이 되다’. 나의 음반에 실려있는 곡이다. 피아노가 까만 밤과 작은 별들을 만들어 내고, 해금은 그 장면을 보면서 조용히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늘 함께 연주하던 피아니스트와는 다른 연주에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끼고, 그러다가 이내 서로의 소리에 익숙해진다. 소리가 스며들듯이 섞여지면서 마음이 촉촉해졌다.
‘야상월우’. 양방언 감독 곡으로 처음 연주하는 곡이었다. 연습할 때는 못 느꼈던, 뭐랄까,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조용하고 서정적인 곡인데 감정이 끌어 오르면서 마지막 부분에는 뜨거움이 느껴졌다. 음악이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곡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 곡 ‘프런티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흥겨운 곡이다. 원곡에서는 기타, 피아노, 태평소, 피아노, 장구 등 여러 악기들이 함께 연주한다. 그래서 꽉 차 있고, 이 곡을 듣는 사람들을 들썩이게 만든다. 이번 공연에서는 피아노, 해금, 장구 이렇게 셋이서 연주를 했다. 연습할 때 과연 세 악기 만으로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지 걱정했다. 하지만 연습하면서 적어도 나는 재미있었다. 그래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재미있게 연주하면 누군가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재미없으면 아무도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양방언 감독도 이렇게 해금과 셋이 연주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숨지 말고, 막 해라!” 이것이 그의 요구였다. 음악할 때 한 사람이 숨으면 그만큼 공간이 생긴다. 그럼 누군가는 과장해야 하고, 그러면 균형이 깨지고 좋은 연주가 될 수 없다. 셋이서, 신나게, 막 했다.
혼자서는 외로울 일을 둘만 돼도 전혀 외롭지 않게 할 수 있다. 여행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참 즐거웠다. 무대는 신나는 곳이다. 그래서 다시 행복하게 무대 뒤의 삶을 사는 것이다.
꽃별 해금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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