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동료들과 함께 최근 개장한 아쿠아리움을 찾았다. 여직원들이 대부분이라 흐리고 비 오는 날 북한산 둘레길 대신 선택한 곳이었다. 최근 3~4년 사이에는 모두 아쿠아리움을 간 적이 없어 기대감이 제법 컸다. 아이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선물하기 위한 가족들의 행렬과 데이트하러 온 연인들, 견학 온 유치원생들 사이에 섞여 우리 팀도 움직였다.
실제로는 경험하기 어려운 바닷속 세계가 눈앞에 있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다양한 모양의 해파리들이 여러 색깔의 조명에 맞춰 춤추듯이 흐느적거리면 마치 큰 꽃잎이 흩날리듯 아름다웠다. 해파리들로 이뤄진 터널 속을 지나면 낭만적 분위기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저렇게 유연하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이 정말 살아있는 동물일까 할 정도로 신기했다. 온갖 색깔의 열대어를 보며 너무 예쁜 색깔에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400㎏이 넘는 바다코끼리가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모습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즐거움을 줬다.
바다 동물들과 식물을 볼 때마다 즐거워하면서 각자의 다양한 느낌과 생각을 풀어내는데 스스로의 반응들에 멈칫하며 순간 말을 멈추게 됐다. 서로를 쳐다보며 함께 박장대소하면서 우리가 표현했던 말들을 되뇌었다. 대왕 문어를 보면서 “문어 숙회해서 먹으면 양이 정말 많겠네”, 빛을 내며 우아하게 떠다니는 해파리를 보고 “갑자기 해파리냉채가 먹고 싶다”, 커다란 게를 보며 “엄청 큰데 정말 맛있겠다. 쪄서 먹으면 더 좋겠다”를 연발하기도 하고, 마치 비행하듯 헤엄치는 가오리를 보며 “요리하면 20명은 먹을 수 있겠다” 등. 우리의 반응은 옆의 아이들이 보이는 천진한 감탄과는 너무 달라 갑자기 서로 웃었다. 어떻게 모두 음식과 연관된 반응들이 많은지 우리 너무 삭막한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웃음도 진솔하게 나누면서 배고픈 시간이라서 그런가 보다라고 위로하며 관람을 계속했다.
유독 눈에 들어오고 관람을 마친 후에도 기억에 남는 곳이 있었다. 바로 정어리와 상어가 있는 수족관이었다. 수백 마리의 정어리들이 무리를 이뤄 헤엄치는 것을 보고 일사불란한 모습과 덩어리지어 함께 움직이는 모습에 아름다움을 느끼다가 그 아래 유유히 움직이는 두 마리의 상어를 보고는 모두 흠칫 놀랐다. “예쁜데 좀 무섭기도 하다.” “ 상어가 있으니까 저렇게 더욱 뭉쳐 있나 보다.” 다소 씁쓸해진 마음을 서로 나눴다. 정어리와 상어는 너무나 인상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슬펐다. 누군가는 정어리와 포식자인 상어를 저렇게 함께 두는 것은 일종의 학대가 아니냐며 이야기하고 우리는 직업적인 것과 너무 연결한 것 아니냐고 웃기도 했는데 우리 삶과 비슷해서 더욱 아련했다.
정어리는 청어과의 작은 물고기이고 ‘바다의 쌀’이라고 한다. 인터넷에 정어리를 검색하면 수만 마리의 정어리 떼 옆으로 상어들이 틈을 노리는 사진이 나온다. ‘상어의 뷔페’라는 제목으로 남아공 인근에서 정어리 무리를 공격하는 상어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남긴 사진작가도 있었다. 상어의 뷔페는 정어리 떼가 이동하는 시기에 포식하려고 뒤를 쫓는 상어의 모습을 보고 붙인 제목이었다.
정어리와 상어를 보며 우리가 사는 현실도 비슷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고 힘이 없어 위기와 위험에 뭉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서럽지만 또한 뭉칠 수 있는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것이 든든하기도 하니까.
반나절의 아쿠아리움 관람을 마치며 일상적이지 않은 것을 보면서 일상을 다시 느끼는 시간이 됐다. 아이들의 반응과 우리 스스로의 반응을 보면서 어른의 마음도 아이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다시 느낀다. 축소된 바다의 모습이 인위적이라 해도 신기해하고 즐거워하고 추억을 남기고 싶어 하는 순수한 마음이 어른에게도 있다.
아이들의 눈에 정어리와 상어는 어떻게 보였을까? 삭막한 현실을 자조하는 씁쓸함이 아니라 자연의 모습에 감탄하는 즐거운 경험이었기를 바란다. 무리지어 빙빙 돌면서 마치 한덩어리의 은빛 구름처럼 보이는 정어리와 상어의 모습은 두고두고 뇌리에 남을 것이다.
박은진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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