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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CEO들의 힘든 여름나기

입력
2014.07.2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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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가 이렇게 중요한 사회 화두가 된 적이 있었던가요?

여기저기서 독려인지 명령인지 알 수 없는 “제발 휴가를 떠나라”는 ‘윗분’들의 목소리가 들려 옵니다. 연차수당 비용이 부담스러운 재계는 말할 것도 없이 정부에서도 ‘공무원 휴가 하루 더 가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심지어 경제부처 장관들까지 휴가를 독려하고 나섰다고 하죠. 근로 생산성 증대와 내수 진작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은행권을 둘러 보면 CEO들부터 이런 사회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느낌입니다. 금융감독원의 무더기 제재가 예정돼 있는 데다 M&A, 민영화 등 현안도 산적해 있어 이들에게 휴가는 멀고도 먼 이야기입니다.

23일 은행권에 따르면 여름휴가 계획을 잡은 주요 금융지주사와 시중은행 CEO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24일 제재심의위원회가 예정돼 있습니다. 휴가는커녕 당장 조직과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처지입니다. KT ENS 부실 대출, 금감원 종합검사 등으로 징계가 예상되는 김종준 하나은행장 역시 휴가계획이 없습니다. 지방 영업점 방문 등으로 휴가를 갈음할 예정입니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은행장은 우리은행 분리매각 방침이 정해짐에 따라 휴가 없이 세부 민영화 계획에 매달리기로 했습니다. “전에도 휴가다운 휴가를 가신 적은 없는 것 같다”는 게 직원들의 설명입니다. 김한조 외환은행장은 휴가일정을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은행과 조기통합을 선언하면서 노조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어 휴가 내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과 서진원 신한은행장도 아직 휴가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이 그나마 최근 휴가 일정을 확정했습니다. 8월초에 가족과 국내여행을 떠날 계획입니다.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28일부터 일주일 간 전북 군산에서 직원들과 무주택자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희망의 집짓기’ 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여름휴가를 대신합니다.

이러니 은행권 임직원들의 속도 참 많이 탈 듯합니다. 아무래도 CEO가 휴가를 포기하면 임직원도 눈치를 보게 마련이죠. 김주하 농협은행장이 31일과 8월 1일 이틀 간 휴가 일정을 잡은 것도 “행장님이 안 가시면 직원들도 못 간다”는 주변의 강력한 조언에 못 이겨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은행권 CEO들이 휴가를 차일피일 미루는 게 단지 현안이 산적해서일까요? 금융권의 경직된 문화 때문은 아닐까요? 이성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비교적 문화가 경직된 금융권은 본래 휴가 문화에 소극적”이라며 “일이 많다는 이유도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휴가를 근로해서 정당하게 얻는 권리가 아닌 업무 처리 후 남는 시간에 쓰는 것으로 인식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특성과 연관이 깊다”고 분석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휴가 독려의 경영상 이득에 대한 인식이 퍼지면서 차츰 금융권도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하고 있네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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