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실제 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 발견 소식은 당혹스럽고 충격적이다. 전남 순천의 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후 40일간 방치됐다는 게 기가 막히고, 이런 사실도 모른 채 그 동안 유씨를 잡겠다고 법석을 피운 게 한심하다. 군을 투입하고 반상회를 열어 국민까지 동원했는데 이제 와서 유씨가 오래 전에 변사체로 발견됐다니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공권력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정부의 무능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지난달 12일 밭 주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유씨를 노숙자의 단순 변사로 처리했다. 유류품에서 세모 계열사가 생산한 스쿠알렌과 유씨의 저서 제목과 같은 글씨가 적힌 가방 등 뚜렷한 단서가 여럿 있었으나 무시했다. 최고급 명품과 발견 장소, 금니와 백발 등 신체적 특징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변사 사건의 기본인 지문채취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시신 부패가 심해 발견 당시 지문채취가 불가능했다고 둘러대지만 어제 새벽 지문 복원을 시도해 1시간 만에 성공한 것을 보면 직무유기 외엔 설명이 안 된다. 수사의 원칙만 지켰어도 유씨의 사망을 일찌감치 밝혀낼 수 있었다.
사건을 지휘한 검찰의 책임도 크다. 경찰이 보고한 유류품 목록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고, 신원확인에 대한 지휘도 소홀히 했다. 경찰이 간과했더라도 변사체 발견 장소가 유씨가 은거했던 곳 인근이라는 점을 감안해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검찰과 경찰은 지난 5월 말부터 유씨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끊긴 송치재 휴게소 주변을 정밀 수색했다. 총 55회에 걸쳐 연인원 8,000여명을 동원했다. 휴게소에서 불과 2.5㎞ 떨어진 곳이었으니 수색이 부실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유씨가 사망한 사실도 모른 채 영장을 재청구한 검찰은 망신살이 뻗쳤다. 검찰은 영장을 재청구하면서도 “유병언 검거는 시간문제”라고 호언장담했다. 사망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검찰이나 경찰이나 수사의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은 차이가 없다.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이 질책을 하자 유씨가 이미 사망했을 시기에 경찰과 외교부, 해경, 군 등 관계기관 회의를 열어 범정부적 대책을 세운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대검중수부 출신 검사들을 대거 투입하는 등 검찰 사상 최대 규모인 110명의 검거팀을 구성했다. 유씨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수사력을 낭비한 책임을 면키 어렵다. 유씨 사망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차질이 빚어지고 범죄수익 환수와 책임재산 확보도 어렵게 됐다. 경찰청은 어제 순천경찰서장과 형사과장을 직위해제 했으나 정작 책임질 당사자는 검찰과 경찰 수뇌부다. 공권력과 정부의 총체적 무능과 불신의 책임을 꼬리 자르기로 적당히 넘어갈 생각만 하는 셈이다.
유씨 사망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의문점부터 해소해야 한다. 도피 조력자가 많던 유씨가 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는지, 사망 시점이 언제이고 사인은 무엇인지 밝혀내야 할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의문들이 확산되면서 유씨의 사망을 믿기 어렵다는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검ㆍ경의 검거 실패 책임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일말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투명한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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