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추기경과의 첫 번째 만남에서 “나는 한국을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짝사랑’의 나라 한국을 곧 찾는다.
내가 알기로 이 짝사랑에는 사연이 있다. 올해 초 내가 강연 차 아르헨티나를 직접 방문했을 때 교황과 각별한 사이인 1.5세대 교포 문한림 보좌주교를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그 곡절을 들었다.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주교로 있던 교황은 한국계 성직자와 수도자의 성실함과 명민함에 크게 만족해했고, 교포 신자들의 ‘화끈한’ 신심에 큰 인상을 받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이제 그 짝사랑에 비길 수 없는 폭풍사랑으로 보상받고 있는 교황. 그가 한국에 오면 누구를 가장 먼저 만나고 싶어 하고 무엇을 가장 먼저 보고 싶어 할까? 그 힌트는 이미 공식일정에 노정돼 있다. 하지만 그의 숨은 욕구는 그것만으로 온전히 드러났다고 할 수 없다. 그 까닭을 우리는 그의 범상치 않은 일화에서 발견한다.
미국 테오도르 맥캐릭 추기경이 바티칸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교황에 얽힌 기억을 이렇게 술회했다. “내가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 때 베르골리오 추기경(현 교황 프란치스코)이 마중 나와 내 가방을 받아들고, 렌트한 차를 손수 몰아 교구청으로 향했다. 그런데 베르골리오 추기경의 도시 가이드는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가는 길에 눈길을 끄는 유명한 명소들이 많았는데, 유일한 관광안내는 ‘이 다리 밑에는 최악의 슬럼가가 몰려 있어서 자주 들릅니다’라는 것 뿐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요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낮은 곳, 땅의 백성, 상처 입은 사람들…. 왜 이들이 교황에게는 우선적인 사랑의 대상일까. 어느 인터뷰에서 교황은 자신의 선택에 삼투되어 있는 가치지향의 단초를 이렇게 드러냈다. “로마의 박해 기간 중에, 황제는 로렌스 부제에게 가톨릭교회의 보물을 넘기라고 명령했습니다. 지정된 날에 로렌스는 가난한 사람들 무리를 데리고 황제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이 사람들이 교회의 보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보전해야 할 패러다임입니다.” 여기에 교황의 시종일관한 의중이 드러나 있다. “바로 이 사람들이 교회의 보물입니다.” 이로써 이 말은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명언이 된 셈이다. 이 이야기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세상의 관점에서 업신여김 당하는 모든 이들을 일컫는 메타포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교황은 이 ‘보물’들을 ‘보물’로서 특별대우해 줄 필요를 역설한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상’을 기피한다. 추상보다는 구체, 다수보다는 한 사람에 집중하려 한다. 이는 깊은 철학의 반영이다. 추상이나 다수에 현혹되면 구체와 한 사람을 놓칠 위험이 있지만, 구체와 한 사람에게 충실하면 궁극적으로 추상이나 다수를 아우르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황의 이러한 가치지향은 이번 교황 방한준비실사단(교황청 전례·공보 담당자들) 방문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그들이 한국 취재기자들에게 신신당부한 것 가운데 하나는 교황이 사람들 향해 손을 흔들고 눈을 마주치는데 취재진이 가로막지 말아 달라는 주문이었다. 이렇듯이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독 일대일 ‘아이컨택’을 중요하게 여긴다.
교황의 말이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씩 둘러보고, 내 앞에 있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파악한 다음에 일대일 관계로 들어갑니다. 나는 대중 앞에 서는 것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대중 속에서 ‘한 사람’을 보는 눈! 이는 기적의 시선이다. 이는 교황의 간절한 지향이기도 할 터다. 그리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은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기에 앞서, 지금 이 순간 치유와 격려가 가장 필요한 한 사람, 바로 나를 위한 것일 수 있다.
차동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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