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선악대결·정의구현 오늘 개봉 '군도' 서부극 전형 담겨
공동체 정의를 향한 통쾌한 민란
한국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이 개봉했을 때였다. 1930년대 만주를 배경으로 서부극 요소를 펼친 스크린에 많이들 낯설어했다. 충무로의 새로운 시도라는 반응도 나왔다. ‘김치 웨스턴’ 또는 ‘만주 웨스턴’이란 표현이 동원됐다.
대중이 이물감을 느낄 만도 했다. 서부극은 할리우드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한국형 서부극의 역사는 꽤 길고 뼈대도 나름 굵다. 1960~70년대 충무로에도 서부극이 유행했다. 임권택 감독의 ‘황야의 독수리’(1969)가 관객의 시선을 끌었고 구봉서가 주연한 코믹 서부극 ‘당나귀 무법자’(1970)도 만들어졌다. 충무로 서부극의 대표작은 종종 ‘쇠사슬을 끓어라’(1971)가 꼽힌다. 요절한 천재 이만희(1931~1975) 감독 작품이다. 장동휘, 남궁원, 허장강, 황해 등 당대의 액션배우들이 카우보이 모자를 쓴 채 말 달리고 오토바이를 몬다.
서부극의 흔적은 세계 곳곳의 영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는 종종 서부극에서 모티프를 따오거나 서부극에 다시 영향을 줬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명작 ‘7인의 사무라이’(1954)와 ‘요짐보’(1961)는 서부극의 형식을 강하게 띤다. 산적들에게 고통 받는 농민들에게 고용된 떠돌이 사무라이들의 활약상을 그리거나(‘7인의 사무라이’) 한 마을을 점령한 두 불량배 집단을 오가는 나그네 사무라이의 모험극(‘요짐보’)을 묘사했다. ‘7인의 사무라이’는 할리우드에서 ‘황야의 7인’(1960)으로, ‘요짐보’는 ‘라스트 맨 스탠딩’(1996)으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홍콩의 고전영화 ‘용문객잔’(1967)도 무협을 외피로 서부극의 특성을 안았다. 인도영화와 옛 소련영화에서 서부극의 유전자를 찾을 수도 있다.
서부극은 대체로 좋은 놈과 나쁜 놈의 명확한 대결 또는 덜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싸움이 스크린을 채운다. 좋은 놈 또는 덜 나쁜 놈의 승리는 정의로 귀결되기 일쑤다. 무법지대였던 마을은 평화를 찾고 주인공(들)은 마을을 떠나 새로운 모험을 찾아 나선다.
23일 개봉하는 ‘군도: 민란의 시대’도 서부극의 전형성을 지녔다. 좋은 놈과 나쁜 놈이 등장한다(이상한 놈은 나오지 않는다). 머리가 나쁘면서도 단단한 백정 도치(하정우)와 고을 사람들의 고혈을 빠는 부호 조윤(강동원)의 사연을 줄기로 조선 후기의 혼란을 전한다. 영화는 도치와 조윤의 대결과, 의적 무리의 활약을 발판으로 대중에게 재미를 안기려 한다. 지리산을 배경 삼아 ‘지리산 웨스턴’이란 별칭이 따른다. 감독은 윤종빈. ‘용서 받지 못한 자’(2005)와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로 사회에 비판의 칼을 들이댔다.
개봉도 하기 전 설왕설래가 많다. 상업적인 완성도에 대한 의견은 엇갈리는데 윤 감독 특유의 사회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다수다. 과연 그럴까. 서부극은 상업영화 장르이면서도 태생적으로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품는다. 옛 소련의 서부극에선 ‘미제 자본가’가 종종 악당으로 등장했다. 서부극은 힘의 논리로만 작동하는 혼란의 시대,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대중의 염원을 담기 마련이다.
‘군도’에는 “뭉치면 백성이요, 흩어지면 도둑”이라는 대사가 몇 번 반복된다. 다 함께 잘살 수 있는 공동체를 위해 뜻을 모아 행동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백성(국민)이고, 제 살길만 찾으려 하면 도둑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힐난이다. 과연 우리는 뭉치고 있는가.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군도’는 지극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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