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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한 인간의 욕망, 귀신보다 무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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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한 인간의 욕망, 귀신보다 무섭네

입력
2014.07.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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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한여름 무더위가 시작되면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전설의 고향’ 류의 납량물은 텔레비전과 스크린을 바쁘게 오가며 대중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그러나 하얀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의 하소연을 듣다 보면 어딘가 현실감이 떨어진다. 귀신이라는 소재에 내포된 비현실성과, 대중과 콘텐츠 사이에 동떨어진 물리적ㆍ시간적 공간 탓이다. 올 여름 ‘귀신의 한(恨)’ 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욕망’을 소재로 펼치는 라이브 무대는 그래서 관객을 더 오싹하게 만든다.

욕망의 덫에 걸린 두 남자이야기, ‘데스트랩’

연극 '데스트랩'은 욕망의 늪에 빠진 두 남자의 추악하고 잔인한 심리를 그린다. 아시아브릿지컨텐츠 제공
연극 '데스트랩'은 욕망의 늪에 빠진 두 남자의 추악하고 잔인한 심리를 그린다. 아시아브릿지컨텐츠 제공

욕망은 성공을 위한 필수요소다. 하지만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순간 인간은 극도로 추악해진다. 연극 ‘데스트랩’은 욕망에 사로잡힌 두 남자의 추악한 눈빛을 담았다. 한물간 추리소설가 시드니는 완벽한 희곡 ‘데스트랩’을 발견한 후 눈빛이 흔들린다. ‘데스트랩’의 작가이자 자신의 제자인 클리포드를 집으로 초대한 시드니는 희곡을 읽어본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결국 제자의 목을 조른다.

연극은 끊임없이 판을 뒤집는다. 죽은 줄 알았던 클리포드가 살아 돌아와 시드니를 몽둥이로 내리치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시드니의 아내는 충격으로 사망한다. 그런데 두 남자는 죽은 그녀를 보며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극 초반 배우들간 몸싸움이 공포를 담당했다면, 극 후반부는 두 남자의 팽팽한 두뇌싸움이 섬뜩한 긴장감을 불러온다.

‘코믹 스릴러’라는 장르에서 알 수 있듯, 극 중간중간 관객이 포복절도할 만한 웃음 포인트가 등장한다. 하지만 연극은 관객의 웃음마저도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 안도와 공포, 웃음과 광기, 진실과 거짓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데스트랩’은 누구나 마음 한 켠에 숨기고 있는 추악한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당신이 가장 무섭게 느껴야 할 존재는 바로 당신 자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살인도 헌신이라 부를 수 있을까, ‘용의자 X의 헌신’

연극 '용의자 X의 헌신'은 지고지순한 사랑이 불러오는 파국을 통해 욕망의 민낯을 보여준다. 바나나문프로젝트 제공
연극 '용의자 X의 헌신'은 지고지순한 사랑이 불러오는 파국을 통해 욕망의 민낯을 보여준다. 바나나문프로젝트 제공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헌신을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을까. 연극 ‘용의자 X의 헌신’은 이 같은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

연극은 일본 스미다강 하천 부지에서 얼굴이 뭉개진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며 시작한다. 용의자는 피해자의 전부인 야스코. 사랑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설계한 천재 수학교사 이시가미와, 그 알리바이를 깨려는 물리학자 유카와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극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연극은 극 중간중간 배우들이 무미건조한 톤으로 책을 읽듯 무대 위 상황을 설명해 섬뜩함을 더했고 저마다 다른 심리상태에 놓여있는 배우들을 4, 5개로 분할한 공간에서 한꺼번에 보여주며 곧 닥쳐올 비극과 공포에 관객이 미리 몸서리치게 만든다. 연극은 마지막 반전을 위해 20분 가량의 비교적 긴 시간을 할애하는데, 알리바이를 설계하는 것으로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헌신을 끝마친 줄 알았던 이시가미의 또 다른 면모를 들춰내 ‘사랑의 잔인함’을 묘사한다.

사랑일까 집착일까, ‘드라큘라’

뮤지컬 '드라큘라'는 사랑과 집착 사이 줄타기로 관객에 오싹함을 선사한다. 오디뮤지컬 제공
뮤지컬 '드라큘라'는 사랑과 집착 사이 줄타기로 관객에 오싹함을 선사한다. 오디뮤지컬 제공

인간의 피와 흡혈귀, 그리고 400년을 기다린 입맞춤. 소설과 영화로 대중에게 익숙한 ‘드라큘라’의 기본 골자다. 언뜻 보면 귀신 이야기에 더 가까워 보이는 ‘드라큘라’는 따지고 보면 한 사람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혹은 집착)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소재를 다룬다.

이달 국내 초연에 들어간 뮤지컬 ‘드라큘라’ 역시 흡혈귀라는 소재보다 여주인공 미나에 집착하는 드라큘라 백작의 모습에서 더 큰 섬뜩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영국 런던의 변호사 조나단 하커와 그의 약혼녀 미나 머레이가 드라큘라의 성에 도착한다. 미나에게서 400년 전 목숨 바쳐 사랑했던 여인 엘리자벳을 본 백발 노인 드라큘라는 미나를 얻겠다는 목표 하나로 조나단의 피를 먹고 청춘으로 돌아간다. 사랑과 집착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수많은 주변인들을 희생시키는 드라큘라에게서 관객은 오싹함을 느낀다.

한국 공연 최초로 시도되는 4중 턴테이블 무대는 원형테이블 4개가 각각 시계방향 혹은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배경의 전환과 캐릭터의 심리를 동시에 표현한다. 무대장치와 배우의 열연은 한여름 냉기를 불러오기에 손색없지만, 드라큘라가 미나를 보고 사랑에 빠지는 장면과 미나가 드라큘라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너무 급작스럽게 진행된 탓에 개연성이 떨어진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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