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력 태풍 ‘람마순’(Rammasun)이 중국 남부 지방을 강타, 500여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가운데 중국 적십자가 낮 기온이 섭씨 35도도 넘는 이 지역에 겨울 솜이불을 긴급구호물품으로 보내 빈축을 사고 있다.
중국 적십자회는 최근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 재난구호센터에 비축돼 있던 솜이불 2,000장을 태풍 람마순으로 피해가 큰 광둥성의 잔장(湛江), 무밍(茂名) 등의 지역으로 보냈다고 신화통신이 21일 전했다. 그러나 현재 이 지역은 삼복더위가 한창인 곳이다. 낮 최고 기온은 35도를 넘고 밤 최저 기온도 25도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 없다. 이 때문에 솜이불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이재민들은 “수돗물과 전기 공급이 끊겨 깨끗한 물이 가장 절실한 상황인데 물은 안 주고 솜이불을 도대체 어디다 쓰라고 주는 건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매체는 삼복더위의 이재민들에게 필요한 건 두툼한 겨울 솜이불이 아니라 돗자리와 얇은 이불 등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중국 적십자회는 잘못이 없다는 태도다. 광둥성 적십자회 관계자는 “재난구호물자의 품목은 재난 지역의 요청과 보고에 따른 것”이라며 “물 피해를 입은 지역의 이재민이 겨울을 보내기 위해선 솜이불이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관영 신화통신조차 “재난구조활동에선 단계마다 다른 구호 물품 등이 필요한 법”이라며 “전문적인 재난구호 활동으로, 더 이상 ‘한 여름에 솜이불을 보내는 황당한 일’은 피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적십자회가 솜이불을 긴급히 소진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도 보내고 있다. 중국 적십자회는 그 동안 이재민용 천막을 시가보다 5배 이상 비싸게 사고, 재난 현장으로 가야 할 일부 구호 물품을 다른 곳으로 빼 돌려 팔았다는 등의 비리 의혹이 인터넷 상에서 끊이지 않았다.
중국에선 1973년 이래 41년 만에 가장 강력한 최대풍속 17급(초속 60m)의 태풍 람마순이 지난 주말 하이난(海南), 광둥, 광시(廣西)장족자치구 등 3개 성에 상륙, 17명이 목숨을 잃고 5명이 실종됐다. 이재민도 500만명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재해대책 응급조치를 발령하고 구호활동에 나섰지만 현장과는 동 떨어진 대책과 주먹구구식 행정으로 이재민의 고통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에 앞서 람마순은 필리핀을 지나면서도 100여명의 희생자를 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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