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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감독 놀음’과 내각 구성

입력
2014.07.2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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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초년병 시절 스포츠를 취재할 때였다. 팀이 승리할 때마다 ‘아무개 감독 123승’ 하는 식으로 숫자가 매겨지는 것을 보고 의아했었다. 그라운드에서 직접 땀 흘리며 뛰는 것은 선수들인데, 승리가 감독의 공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했다. 야구에서 홈런을 몇 개씩 치고, 축구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해도 수훈선수로 칭찬 받을 뿐, 그의 이름에 승리가 더해지진 않는다. 물론 야구에서 승리투수의 예외가 있긴 하지만.

벤치에 앉아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감독의 중요성을 깨닫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어떤 선수들로 라인업을 짜고, 어느 시점에 교체 선수를 투입하고, 언제 어떻게 작전을 지시하고 바꾸느냐가 모두 감독의 몫이었다. 똑 같은 선수들도 어느 감독의 지휘를 받느냐에 따라 성적에 확연한 차이가 드러났다. 때문에 축구와 야구 등 프로스포츠는 ‘감독 놀음’이라고도 하고, 감독의 능력이 팀 전력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력한 인사권을 갖고 있는 만큼 책임도 감독이 진다. 계약 기간 내에 목표했던 성적을 내지 못하면 물러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계약 기간 만료 이전에 해고되는 경우도 흔하지만 그렇다고 실패를 선수 탓으로 돌리는 감독은 많지 않다. 그런 리더십에는 손가락질이 따라붙는다. 선수를 부린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는 의미다.

곡절이 많았던 박근혜 정부의 2기 내각 출범을 보면서 스포츠에서 감독의 역할, 팀의 운영 방식을 생각하게 된다. 사상 초유의 정홍원 총리 유임은 1980~90년대 고교야구의 한 장면과 닮았다. 선발 투수 대신 다른 투수를 투입하면서 라인업에서 완전히 빼지 않고, 잠시 외야수 등으로 포지션을 옮겼다가 경기 후반 다시 투수로 등판시키는 것이다. 선수층이 엷은 고교팀에서 투타 모두 능한 선수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일종의 꼼수다.

현대야구, 특히 프로야구에선 이런 편법이 통할 리 없다. 아무리 빼어난 투수라도 공을 던지다 쉬면 어깨가 ‘식어’ 다시 마운드에 오르기 어렵고, 한번 상대 타자들에게 난타당한 투수가 잠깐 휴식을 취한다고 공의 위력이 되살아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책임총리(에이스)와 거리가 멀었던 정 총리에게 다시 공을 맡기면서 에이스의 책임을 부여하겠다는 건 스포츠의 상식에 비춰도 난센스다.

가혹한 검증 때문에 인사 하기가 힘들어진다는 청와대의 항변에선 메이저리그 입단 문턱에서 좌절된 롯데 정대현이 떠오른다. 그는 2011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320만달러에 2년 계약을 합의했지만 메디컬 테스트에서 문제가 발견돼 입단이 무산됐다. 정대현은 이전까지 한국에서 이상 없이 뛰었고, 지금도 맹활약하고 있지만 볼티모어 구단의 메디컬 테스트가 가혹하다고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대현 입장에선 아쉽겠지만 그게 빅리그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추신수의 소속팀인 텍사스 레인저스가 거액을 들여 영입한 강타자 프린스 필더의 부상 사실을 미리 알지 못해 성적이 곤두박질 친 것을 감안하면 철저한 검증은 더더욱 이해가 된다.

스포츠 구단들은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선수를 영입하면서 메디컬 테스트만 꼼꼼히 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더라도 감독의 경기 철학에 어울리는 플레이스타일을 가졌는지, 동료들과 융합할 수 있는 인성을 가졌는지, 사생활에는 문제가 없는지도 들여다본다.

총리 지명 직후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책임총리제에 대해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했던 문창극 전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왜 내가 장관 후보자로 픽업됐는 지 모르겠다”고 한 김명수 전 후보자들의 말 속에서 우린 임명권자의 어떤 철학을 엿볼 수 있을까. 기본적인 메디컬 테스트는 해보기나 한 것일까.

국가 개조라는 어마어마한 목표를 설정한 이 나라의 인재 기용 방식이 일개 프로 스포츠 구단의 선수 선발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말이 안된다. 창조경제이건, 국민행복 실현이건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스포츠 팬들이 승리하는 감독을 바라는 것처럼 국민들도 이기는 대통령을 원한다.

한준규 사회부 차장대우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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