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읽은 가장 아름다운 구절이다
- 이현호 ‘매음녀를 기억하는 밤’ -
자본주의는 많은 결핍을 채워줬다. 명절 음식 만드는 것이 고달플 때, 섹스가 그리울 때, 벽에 못 박기가 힘들 때, 누군가 귀를 후벼주기 바랄 때… 우리는 가족 없이, 연인 없이, 친구 없이 돈만으로 이 모든 욕구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수작이 그리울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늦은 밤 연인을 들여보내고 싶지 않은 사내의 머릿속에서 맹렬하게 나는 소리, 그 맹렬함이 물레를 밟아 실처럼 자아낸 문장들, 한 인간의 열망이 밤하늘의 별과 시와 문학을 제 발 아래 꿇리는 순간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시대는 언제 올까.
위 구절은 젊은 시인 이현호가 낸 첫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에 수록된 ‘매음녀를 기억하는 밤’중 한 줄이다. 위 구절에 속아 보들보들한 연애시만을 기대한다면 곤란하다. 불안하고 불온하고 예민한 소년이 서른을 넘긴 남자 안에 도사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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