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외무 통화 후 서로 딴 소리
서방, 러에 강경대응 여론 고조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 여객기 피격 사건의 진실 규명이 현지를 장악한 친러시아 우크라이나 반군의 비협조로 난항을 겪고 있다. 반군의 미사일 공격을 기정사실화한 미국과 서유럽은 배후로 러시아를 의심하고 있어 양측의 대립이 격화할 조짐이다. 외신에 따르면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19일 전화회담을 갖고 공정한 사건 조사 방안을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통화 직후 러시아는 두 장관이 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주도로 조사한다는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케리 장관이 현장에서 희생자 시신과 여객기 잔해 등 증거물이 제거되거나 훼손되고 있다는 보도에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며 ICAO 조사는 거론도 하지 않았다. 앞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전화통화에서 ICAO 주관 국제 조사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제대로 조사가 진행될지는 불확실하다.
사고 현장을 장악한 반군과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개방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사고 직후부터 19일까지 현장을 방문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조사단은 반군들이 자유로운 조사를 방해했다고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는 성명까지 냈다. 조사단의 방문 직전 다수의 차량이 비행기록장치(일명 블랙박스)와 기체 잔해 등 핵심 증거를 러시아 국경 너머로 빼돌리거나 훼손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러시아의 비협조적 태도가 분명해지면서 미국은 물론 최대 희생자가 난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각국에서 강경 대응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8일 기자회견에서 “피격 여객기가 반군 장악 지역에서 발사된 미사일에 맞았음을 시사하는 증거가 있다”며 “반군이 러시아로부터 꾸준한 지원을 받아 왔음을 알고 있다”고 러시아까지 비판했다. 그는 또 푸틴을 향해서도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되는 상황에 대해 가장 큰 통제권을 갖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그는 그 권한을 쓰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러시아가 반군에 무기가 흘러가는 것을 묵인하고 있다”며 러시아를 몰아 세웠다.
하지만 반군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국제 조사단의 접근을 막고 있으며 반군은 현장을 훼손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이번 사건 직전 미국이 내린 대러 추가 제재에 맞서 일부 미국인에 대해 19일부터 입국금지 조치를 내리는 등 서구에 대한 강경대응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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