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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두르진 못해도 휘둘리진 않는다... 버는 만큼 살면 되겠지"

입력
2014.07.1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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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집 마당을 차지한 동네 어머니들이 텃밭에서 딴 돔부콩과 강낭콩을 정리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네 집 내 집이 따로 없는 소녀시절로 되돌아간 모습이다.
필자의 집 마당을 차지한 동네 어머니들이 텃밭에서 딴 돔부콩과 강낭콩을 정리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네 집 내 집이 따로 없는 소녀시절로 되돌아간 모습이다.

'돈을 산다'는 어르신들

꼭 귀농하겠다는 선배

나처럼 살거라는 아들

구례 동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선재가 물안경을 쓰고 친구들과 지리산 피아골 계곡을 찾아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구례 동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선재가 물안경을 쓰고 친구들과 지리산 피아골 계곡을 찾아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맘 먹고 논에 나갔다. 예초기와 부속 도구를 챙기고 물장화도 오토바이에 실었다. 논둑 풀도 깎고 피도 뽑고, 오늘은 내 논에 몸을 묻으리라는 각오로 도착했다. 예쁜 주황색에 야들야들한 장화를 팬티스타킹 신듯 쭉쭉 당겨가며 힘겹게 허벅지까지 올렸다. 남들은 쉽게 신는데 쓸데없이 굵은 종아리 탓이다. 몸뚱아리가 도움이 안 된다. 마분지처럼 접기도 힘들어 쪼그려 앉는 일도 불리하다.

폭 30m 길이 100m. 후다닥 뛰면 1분 안에 논두렁 한 바퀴를 돌 만한 크긴데 발 담그고 일을 시작하니 항공모함만하게 보인다.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몸은 더워도 발은 시원한 것이 논 일이건만, 날이 뜨거우니 물마저 뜨듯해져서 기분까지 밍밍하다. 논 일을 제대로 해봐야 농사란 게 뭔지 알게 된다던 동갑내기 친구 말이 머리를 스친다. 가볍게 웃어 넘겼는데 쌀 미(米)자 숨은 뜻에 여든 여덟 번(八十八) 손길이 가야 한다는 의미가 담겼다더니 얼추 맞을 듯 하다.

기우뚱거리는 몸을 되잡아가며 움직이니 논고랑 두 번 왕복하고는 다리가 후들거린다. 논 중간에서 퍼질러 앉을 수도 없고 해서 살짝 가장자리로 기어 나왔다. 나무 그늘까지 가기 힘들어 그냥 다리만 뻗치고 앉았다. 쉬는 꼴이 보기 싫었는지, 해가 중천이요 풀 숲도 아닌데 모기들이 앵앵거리며 달려든다. 옆 마을 남원 사는 후배가 그랬다. “나중에 조물주 만나면 한 번 물어보고 싶어요. 도대체 모기는 왜 만든 거냐고” 같이 맞장구를 쳤지만 가만 생각하니 조물주한테 혼구녕이 날 것 같았다. “너희는 왜 태어난 것 같냐. 내가 뭔들 못 만들겠냐. 사람은 모르고 돈만 아는 인간들아”

땀방울 범벅으로 다초점 렌즈가 되어버린 안경을 벗어 대강 닦아 다시 쓰고 노고단을 바라보는데 멀리서 고급 승용차가 다가온다. 속도를 줄이는 듯 싶더니 부드럽게 창문이 열리는 게 보였다. 모른 체 하고 있는데 얼굴 절반을 선글라스로 가린 아줌마가 이쪽으로 손가락질 하며 아이에게 뭐라고 설명을 한다. 에어컨 바람이 밴 카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얘야, 저기 저 아저씨 봐라. 어렸을 때 공부 안 하면 이 더운 날 저렇게 힘든 일 하고 살아야 된단다. 저 아저씨 아마 겨울도 춥게 살 걸?” 어떻게 알았을까. 겨울날 기름값에 벌벌 떨면서 방에서도 점퍼 입고 지내는 걸. 시커먼 썬팅창이 올라가면서 리무진도 속도를 올렸다. ‘땅을 보러 왔나. 곱게 길이나 갈 것이지.. 괜히 혼자 언짢았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데 내 뒤태는 어떤 모양일까. 중학생 아들 선재는 이런 모양의 아빠한테 눈길이나 주고 있는 걸까. 난 잘 살고 있는 건가.

전화벨이 울렸다. 손이 젖어 입술로 폴더를 젖혀 보니 동네 형님이다. 기계로 논 갈고 모내기 해주셨는데 품삯을 아직 못 드렸다. 미안해 할 일이 아닌데도 급히 쓸 데가 있으니 입금 좀 해달라며 멋쩍어 하신다. 일곱 마지기니까 77만원. 뭉텅이 돈이다. 어젯밤 아내와 가계부를 확인하면서 올해는 흑자로 전환할 수도 있겠거니 했는데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작년엔 저온저장고에 관리기도 장만하고 고정비용이 꽤 들었지만 올해는 덜해 좀 나아지리라 예상했었는데. ‘적자 폭을 좀 줄여보지 뭐’ 쉽게 타협했다.

논두렁을 더 헤매다가 점심 때가 지나 집으로 향하는데 또 전화벨이 울려 오토바이를 세웠다. 선배 이름이 뜬다. 최소 10분짜리 통화다. 스스로를 ‘형’이라 칭하며 뭐든 다 해줄 것처럼 얘기하지만 술값 낼 때면 어김없이 잠드는 사람이다. “어이 유헌이~ 잘 하고 있지?” 군대나 직장이나, 고참들이 많이 쓰고 제일 싫어하는 말이었다. 뭘 잘하냐는 건지. 내가 뭘 하고 있는 지나 알고 묻는 건지 모르겠다. “형이 한 번 내려가야 되는데 미안하다 야.” 자랑 반 한탄 반으로 수다를 이어가더니 막판에 후렴구처럼 덧붙인다. “형도 꼭 내려 갈거야. 먹고 살 것만 해결하고 애들 대학만 마치면 너 있는 데로 갈게. 그 두 가지만 해결 되면 바로 갈 테니까 땅이나 잘 봐둬.” 두 가지만? 그 두 가지가 전부 아닌가? 그럼 나는 둘 다 포기하고 내려온 걸로 보이나?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서니 동네 어머니들 너 댓 분이 마당을 차지하고 맨 바닥에 주저 앉아 집안 텃밭에서 수확한 돔부콩을 뜯어 내고 계셨다. “원샌, 논에서 이제 오시는겨? (이곳에선 남자들을 호칭할 때 성 뒤에 ‘샌’자를 붙이고 앞에는 여자들 호칭으로 구분한다. 즉, 아내가 서울댁이니 나는 ‘서울 원샌’이 된다. ‘샌’이란 말이 생원에서 생겼다고 하던가) “하이고 어쩌끄나 힘들어서 잉. 애쓰셨소. 근데 선재 즈그 어매도 없던데 밥은 워쩐당가?” 이 분 저 분 한마디씩 하셨다. “예 제가 대강 챙겨 먹을게요. 근데 엄니들은 어쩌자고 이러고 계신대요. 그냥 놔두세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알아서 뭘 할 줄 안다고. 우리가 놀아감서 시나브로 헐텡게 신경 쓰덜 말고 언능 들어가 뭐라도 잡숴요.”

대강 챙겨 먹고 입만 헹구면서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어머니들은 뙤약볕 아래서 바삐 손을 움직이면서도 연신 농담에 웃음을 이어가셨다. 흩어진 부스러기라도 치우려고 빗자루를 들었더니 어머니들이 큰 소리를 내신다. “원샌은 어여 나가 일봐요. 여기 신경쓰덜 말고.” 어? 여긴 우리 집이고 콩도 우리 콩인데. “그래도 아무도 없이 엄니들만 이러고 계시면 어떡한대요.” 반발했더니 더 큰 소리를 내신다. “아 글씨 여긴 우리가 알아서 헌당께. 원샌은 일이 많으니께 어여 나가시랑게요!” 혼을 내시는데 가슴팍이 먹먹하다. 말 만이 아니라 진짜 어머니들이시다.

저녁을 먹는데 선재가 도서관에서 먹은 저녁 값을 보충해 달란다. “줘야지” 하면서도 그깟 푼돈에 가계부가 먼저 떠오른다. 서울 살 때에 비하면 학생 선재에게 드는 돈은 절반도 안 된다. 학교에 가져가는 돈이 없고, 학교에서 진행하는 예체능 방과후 수업은 종류와 질적 측면에서 결코 서울에 뒤지지 않는다. 기타, 바이올린, 수영에 골프까지… 오히려 감지덕지한 게 많다. “난 엄마 아빠만큼만 살면 좋겠어.” 뜬금없다. 오늘 얘가 왜 이러나. 공부고 뭐고 다 포기하겠다는 건가. 당황하지 않으려고 차분하게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데?” 선재가 담담하게 얘기한다. “그냥…우리 정도 사는 것도 쉬운 게 아니더라구. 서울 살 땐 누구나 그렇게 사는 줄 알았어. 여행도 다니고, 보고 싶은 영화도 보고, 가끔 좋은데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근데 여기 와서 보니까 못 그러는 사람들이 더 많아” 고마웠다. 아무리 얘기해도 실감하지 못했을 것을 체감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엄마 아빠 사는 방법도 괜찮은 것 같아. 사람들이 칭찬도 많이 해.” 으쓱했다. 선재한테 들킬 까봐 어깨에 힘을 빼고 물었다. “어떤 분들이?” “선생님들도 많이 말씀하시고 동네 어른들도 그러셔. 엄마 아빠 훌륭한 분이시라고.” 목이 다시 움츠러들었다. 착하게 살자고 맘은 먹었지만 ‘훌륭’ 정도는 아닌데.

어쨌든 며칠내내 기분이 좋았다. 선재가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로 맘 먹은 것보다, 좋은 성적표를 가지고 온 것보다 엄마 아빠를 지켜봐 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귀농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하나 같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애 학교는 어쩔건데?” 앞에서는 용감하다 대단하다 추켜세웠지만 무책임한 부모라고 욕하는 말이었다. 아니다. 어차피 강남 학원가로 이사갈수도 없었고, 고액 과외 시킬 능력도 안 되는 바에 사람들과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했다. 교육의 목적이 남들 다 하는 걸 더 잘하길 바라는 거라면 아이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저 욕심이 있다면 해야 할 것은 무릅쓰고 하고, 해서는 안 되는 거라면 기어이 하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는데…

잠자리에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하다 보니 구례로 내려오기 전 아내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우리가 시골가면 한 달에 얼마가 필요할까?” “글쎄, 얼마나 줄여서 살 수 있을까?” 근거도 없고 살면서도 모를 얘기를 주고 받는데 아내가 그랬다. “뭐 버는 만큼 살면 되겠지 뭐.” 맞다. 그게 답이었다. 가늘고 길게 살자고 서로 의기 투합했었다. 물론 살다 보니 돈이라는 건 남아 있는 법은 없고 꼭 귀신 같아서 슬쩍 보이는 듯 하다 금새 사라진다. 그저 시달리지만 않고 살기를 바랄 뿐이다.

이 곳 어르신들은 ‘돈을 산다’는 말씀을 자주 한다. 아까 마당에서도 한 어머니가 “이 콩 남으믄 장에 가서 돈 살겨?” 물으셨다. 처음엔 무슨 말씀인가 했지만 이제는 나도 자주 쓰는 말이다. 돈도 물건이랑 똑같아서 물건 주고 바꿔오는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 담겼다. “그 까짓거 돈이야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쓰면 되는 거지. 한 두 번 굶고 살아봤나.” 윗 밭 장씨 아저씨가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돈을 써 버릇하니까 없어지지 저절로 없어지나. 안 쓰고 살기야 시골이 유리하다는 거지” 덧붙이신다.

생계와 교육, 두 마리 토끼를 다 해결하고 내려오겠다는 그 선배는 언제쯤 내려올까. 올 수는 있을까? ‘토끼 한 마리 제대로 못 잡은 주제에 남 걱정하고 있네’ 생각하는데 선재가 방에서 부른다. “아빠! 등 좀 긁어줘.” 오랜만에 한 이불에 누워 긁적거리고 있는데 아들녀석이 묻는다. “아빠는 좌우명이 뭐야?” 갑작스러운 질문에 떠오르는 건 ‘잘 먹고 잘 살자’인데 그럴 수는 없었다. “휘두르진 못해도 휘둘리진 않는다!” 선재가 뭔 얘긴가 싶은지 눈을 깜박이다 감탄하듯 말을 잇는다. “오~ 멋진데! 아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그야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깊게 하면 돼.” ‘어떻게 그 생각을 했겠니. 주워 들은 거지.’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뒤태 관리에 들어갔다.

어느덧 잠이 온다. 누워있는 등이 따숩고 배도 부르다. 마당에 계셨던 어머니들이 마치 이부자리처럼 푸근하다. 두 마리 토끼에 덤까지 얻은 듯한 이 포만감은 뭘까.

前 한국일보 기자 cameraga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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