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는 “환영. 시행시기 앞당겨 달라”
한국GM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안을 노조에 전격 제시했다. 노조는 사측의 제안에 “환영한다”는 뜻을 밝혀 통상임금 확대가 곧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 등 다른 완성차 업체도 최근 통상임금을 둘러싸고 노사갈등을 겪고 있어 한국GM의 이번 결정은 다른 업체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8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은 17일 열린 18차 임단협 교섭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안을 노조에 제시했다. 사측 안에 따르면 한국GM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되, 수당 계산 방법은 관계법령에 따르자고 했다. 시행일자는 다음 달 1일로 제시했다.
이번 제안을 노조가 받아들이면 직원들은 실질 임금인상 효과를 누릴 것으로 보이지만, 회사는 큰 폭의 인건비 상승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임금은 연장ㆍ야간ㆍ휴일 근로 등에 대한 각종 수당을 산정할 때 기준이 되기 때문에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넣으면 다른 수당도 함께 오른다.
한국GM 관계자는 “회사에서 대승적이고 전향적인 안을 제시한 것은 관련 법을 준수함과 동시에 생산차질 없이 협상을 하루빨리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GM이 통상임금 확대안을 제시한 것은 임단협 결렬로 인해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세르지오 호샤 사장은 7일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파업은 우리 모두의 고용 안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생산물량의 추가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GM의 모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는 전 세계 160여 개 공장의 경쟁력과 생산 안정성을 평가해 생산 물량을 배정하고 있는데, 파업을 하면 물량 배정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GM의 생산 물량은 올 초 유럽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가 철수하면서 지난해 상반기 대비 30%가량 이미 줄었다. 판매실적도 좋지 않다. 한국GM은 올해 상반기에 국내외에서 32만7,280대를 판매해 지난해 동기 대비 18.5% 감소했다. 한국GM 관계자는 “가뜩이나 생산물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노조가 파업할 경우 신차 생산 물량 확보에 큰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본사에 한국GM이 신차 생산 물량을 배정받을 만큼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노조와 교섭을 잘 마무리하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GM 본사는 고임금과 강성 노조, 낮은 생산성 등을 이유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음을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GM이 인건비 상승 부담을 떠안으면서까지 이번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의아해하는 시각도 많다. 결국 한국 철수를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것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그 동안 GM본사는 경쟁력 없는 지역에서는 철수하는 등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해왔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한국GM은 생산물량 자체가 적어 잔업으로 인한 야근수당과 주말 특근수당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즉 자신들의 부담은 크지 않으면서 현대ㆍ기아차나 다른 완성차업체에 비슷한 결정을 내리도록 압박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노조는 사측 제안에 대해 “현대ㆍ기아차 등 다른 회사보다 먼저 통상임금 확대안을 제시한 것은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12월18일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재확인한 만큼 통상임금 확대안은 8월 1일부터가 아니라 올해 1월 1일부터 소급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행 시기를 놓고 노사 입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일단 통상임금 확대안에 대해서는 공감한 만큼 시행 자체는 기정사실로 되는 분위기다. 노사는 다음 주에 교섭을 재개할 예정이다. 앞서 한국GM 노조는 재적 조합원 69.3%의 찬성률로 파업을 결의했다.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사측에 신차 프로젝트를 포함한 미래발전방안을 수립할 것과 정기상여금 및 휴가비 등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한편 주요 기업 중 한국GM이 사실상 처음 통상임금 확대안을 받아들이면서 자동차업체뿐만 아니라 다른 직종 기업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임금 확대를 주장하는 노조가 한국GM의 사례를 들어 사측을 압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와 조선업계를 대표하는 양대 노조인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노조도 통상임금 확대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파업투쟁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 휴가비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사측은 “현재 진행 중인 통상임금 관련 소송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고 결정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현대차 노사는 그 동안 10여 차례 협상했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채 장외 공방전을 벌이는 중이다. 현대차 노조는 기아차 노조 등 다른 현대차그룹 계열사 노조와 통상임금 관철을 위해 연대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한국GM이 처한 상황과 현대기아차의 상황은 다르다”며 “법의 판단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협상이 끝내 결렬돼 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경우 상당한 생산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ㆍ기아차는 지난해에도 노조의 파업으로 모두 7만3,000여대의 생산 차질을 빚으며 1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 손실을 봤다.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는 지난 20여 년 동안 몇 차례 빼고는 해마다 파업을 벌여왔다.
르노삼성도 파업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르노삼성 노사는 17일 집중교섭을 벌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해 결렬됐다. 노조는 “사측에서 기장직급의 전환배치와 아웃소싱을 계속 주장하고 조합원에 대한 자동승급도 거부해 협상이 결렬됐다”며 “사측의 태도변화가 없을 경우 다음 주부터 본격 파업 행보를 진행할 계획이다”라고 주장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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