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지음?홍성광 편역
연암서가 발행?479쪽?1만8,000원
“나는 7월의 따뜻한 어느 날 저녁 시간에 태어났다. 나는 그 시간의 온도를 알게 모르게 평생 좋아하며 찾아 다녔다. 그 온도가 아니면 나는 고통스런 마음으로 아쉬워했다.”
독일 남부의 소도시 칼프에서 태어난 작가 헤르만 헤세는 젊은 시절부터 여행을 좋아했다. 1901년 처음으로 떠난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으로 독일 국경 지대의 빙하 호수 보덴 호,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독일 남동부의 뉘른베르크 등을 돌아다녔으며 인생의 후반부에는 스위스의 작은 마을 테신에서 여생을 보냈다.
‘헤세의 여행’은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와 기록을 한 데 엮은 책이다. 쏟아지는 여행서들 사이에서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헤세가 여행의 의의를 모험심 충족, 교양 함양, 일상 탈출에 맞추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스스로를 방랑자나 유목민으로 여겼던 그에게 여행은, 동남아 현지 여인과의 만남 같은 삶의 곁가지가 아니라 생의 주요한 장면들이었다.
낯선 풍물을 일방적으로 소비하기보다 대등한 위치에서 관계 맺기를 추구했던 그는 그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 즉 희생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행은 언제나 체험을 의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신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만 뭔가 가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가는 즐거운 소풍, 어떤 음식점에서의 유쾌한 저녁, 멋진 호수에서의 증기선 여행은 그 자체로 체험이 아니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못하며, 계속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자극이 아니다.”
헤세는 여행할 때마다 작은 수첩과 부르크하르트의 책을 가지고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첩은 여행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는 데 썼는데, 책에는 헤세가 매일 저녁 고향의 온도를 그리워하며 휘갈겼을 법한 향기로운 단상들이 가득하다. 계절에 맞게 여름 여행에 대한 단상을 한 구절 소개한다. “여름을 제대로 즐기려면 내게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작열하고 찌는 듯이 더운 누런 색 밭들, 높고 시원하며 말 없는 숲, 그리고 많은 노 젓는 날들. 노 젓는 날 말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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