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기업 518조… 5년 전의 2배, 배당 높이거나 임금 추가지급 등
정부, 가계 가처분소득 확대 초점… 과세로 압박 가능성도 배제 못해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가계소득 증대를 위해 기업의 사내유보금 지출 확대 방안을 거론한 것을 두고 재계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기업에 쌓인 돈이 가계로 흘러 들어가 내수를 살리는 마중물이 되도록 ‘당근’이든 ‘채찍’이든 모든 수단을 검토하겠다는 게 최 부총리의 생각. 사내유보금을 배당이나 임금 추가지급 등으로 사용했을 경우 다양한 혜택을 주는 당근이라면 모를까 과도한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하는 채찍은 초법적인 발상이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17일 CEO스코어에 따르면 3월말 현재 국내 10대 대기업이 갖고 있는 총 유보금 규모는 518조1,000억원. 5년 전 269조2,000억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국내외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데다, 주주배당 마저 인색해 수익이 고스란히 금고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보금이 가장 많은 삼성은 총 182조4,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100조원 가량 늘었고 현대자동차 역시 70조원이상 증가한 113조9,000억원에 달했다.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장려책)안은 어렵지 않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금융ㆍ세제 혜택을 통해 기업이 주주들의 배당을 높이거나 임금을 추가지급 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 일례로 수년간 평균치보다 높은 임금 인상률을 유지한 기업에 대해 증가한 인건비 지출분의 일부를 세금에서 덜어주는 방법이 있다.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겠다는 최 장관의 발언에 부합하는 해법이다. 또 배당금에 대한 소득세율을 낮춰 주주들이 배당을 많이 요구하도록 해 배당 촉진을 꾀하거나 배당주펀드에 세제 혜택을 줘 배당을 많이 하는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도록 하는 방법도 검토가 가능하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직접 과세하는 것 보다는 아무래도 기업들의 거부감이나 부담이 덜한 게 사실이다. 세금을 매겨 강제할 경우, 이를 핑계로 기업이 해외로 나갈 가능성이 커지는 등 부작용도 크다”라고 말했다.
관건은 기업에 채찍을 가해 돈을 풀도록 압박하는 방안이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는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유보금에 세금을 매기거나 기업이 유보금을 굴려 얻은 금융소득에 별도의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방안 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이날 “(사내유보금의 세금 부과는) 사내유보금을 바깥으로 풀도록 유도하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지 세수 확대 목적이 아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과 일본에서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한때 비상장사를 대상으로 시행한 전례가 있다.
하지만 재계는 ‘유보금 = 현금’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유보금 중 상당수는 이미 공장이나 기계, 토지 등에 투자됐다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사내유보금의 투자비중은 2010년 기준으로 84.4%에 달한다. 만약 사내유보금이 1조원이라면 8,440억원은 이미 투자가 됐다는 얘기라는 것이다. 재계가 정부의 과세 계획에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중과세 문제도 제기된다. 사내유보금은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의 합. 즉, 잉여금 자체가 이미 세금을 내고 남은 부분인데 여기에 다시 과세를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전경련은 이날 “사내유보금 과세가 시행될 경우 법인세가 늘어나는 효과를 초래해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투자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내용의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직무대행 역시 이날 “유보금을 줄이라는 건 이미 기업이 투자한 자산을 처분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재계의 반발에 맞서 채찍을 들기 위해선 일방적인 정책 추진은 역효과만 부른다고 조언한다. 김상헌 서울대 교수는 “단순히 세금만 부과한다면 경제계에 어떤 식으로든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며 “구체적인 보완책을 논의해 재계를 설득하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세종=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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