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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장시간 노동 관행, 이번에는 바꿔야

입력
2014.07.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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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자동차공장에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기 위한 연구를 하면서 해당 노조의 조합원 부인들과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다. 간담회는 근로체제의 변경이 이뤄질 경우 가족의 여가활동을 위해 회사와 노조가 어떤 지원이 필요할지에 대해 조합원 부인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런데 간담회에서 참석한 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왜 남편들이 해오던 일을 줄여 일찍 집으로 돌아오게끔 하려는가”라며 소득 감소를 우려하는 반대의견을 쏟아냈다. 남편의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거세게 항의하는 부인들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무척 당황스러워 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활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수행했던 다른 현장조사에서도 장시간 노동에 가위 눌린 그들의 삶을 인터뷰하면서 “아니 이럴 수가”하며 기막혀했던 기억을 쉬 지울 수 없다. 조사대상의 노동자들은 제조업체의 사내하청으로, 또는 식당 조리, 병원 간병, 건물 청소, 그리고 학습지 교사 등의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거나 가계의 일부를 책임져야 하는 중년여성들이었다. 이들 여성노동자는 자신의 일터에서 대부분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고 있으며 심지어 간병사의 경우 24시간 환자를 돌봐주는 고된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하루 또는 일주일의 노동을 마친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편히 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 또는 부인으로서 그들은 청소, 세탁, 음식 장만, 자녀 돌봄 등을 도맡아 처리하느라 추가적인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직업여성들이 일터와 가정에서의 이중노동으로 하루하루 피곤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절절한 사연들을 받아 적으며 장시간 노동의 또 다른 현실에 직면했다.

두 일화는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들의 생활 풍속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하는 남성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어 가족 부양을 책임지기 위해 하루 종일 일터에서 지내느라 가정에서 남편 또는 아버지로서의 친밀한 존재감을 잃은 채 그저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 살아가고 있다. 취업 여성들은 직장에서의 장시간 노동에 더해 가사노동의 부담을 감당하느라 가족들과의 여유로운 어울림을 전연 생각지 못하고 있다. 미혼의 젊은 청춘들 역시 형편 좋은 대기업에서든 열악한 중소사업장에서든 연장근로가 당연시되는 직장풍토에서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또는 생계에 필요한 소득을 올리기 위해 장시간 노동의 일과에 순응하며 여가 없는 생활에 허덕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러니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매일 산꼭대기로 무거운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징벌을 받았다는 시지프스가 우리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장시간 노동으로 환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국제통계를 통해서도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일 많이 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연간 근로시간은 2,092시간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765시간보다 327시간이 많다. 즉, 우리 노동자들이 서구 선진국 노동자들에 비해 한해 동안 두 달치 넘는 노동시간을 더 일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더해 여성노동자들이 감당하고 있는 가사노동의 감춰진 시간을 헤아려보면 우리 사회가 일 중독의 중병에 심하게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시간 노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고용기회를 빼앗아 일자리 부족의 문제를 초래할 뿐 아니라 노동자 개개인의 삶과 가족관계를 피폐화시키는 고질적인 덫이 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추진되고 있던 연장근로 단축의 법개정이 무산될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국민 대다수를 이루는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관행을 발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기는 언감생심일 것이다. 장시간 노동에 허덕이는 우리 사회의 시지프스들이 일 중독의 멍에에서 벗어나 가족과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일-가족 양립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넘는 연장근로 관행을 과감하게 줄여가는 제도개선에 정부, 여당이 적극적인 실천 의지를 보여야 할 때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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