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달 11일 영리 부대사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영리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하는 의료법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했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불안과 우려가 앞선다.
치과계는 지난 수년 동안 피라미드형 불법네트워크 치과와 불법 사무장 치과 척결사업에 매진해 왔다. 오랜 기간 불법 척결 사업을 전개하면서 치과계는 의료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때 불어 닥칠 수 있는 폐해를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 ‘치과계 내부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헐뜯었을 때조차 이 싸움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이런 문제가 치과의사들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인 국민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현행 의료법 제1조는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료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뜻은 국가의 의료정책이 국민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의료인은 국민건강권을 수호해야 할 책무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의 행위 주체가 의료인이 아니라 대규모 자본인 기업이 될 때 환자는 ‘치료의 대상’이 아닌 ‘수익을 남겨야 하는 상품’이 된다. 허위 과장 광고를 일삼고, 자연치아를 살리기보다 당장 돈벌이가 되는 진료로 유도하고, 심지어 불필요한 과잉진료를 남발한다면 환자들이 부담해야 할 치과 진료비는 증가할 수밖에 없고, 국민의 건강권은 위협받게 된다.
비영리병원에 영리 자회사를 허용한다는 말은 자회사를 통해 외부 자본이 유입되고, 당연하게 이윤배분도 할 수 있게 돼 병원이 사실상 영리병원화한다는 뜻이다. 소유 및 상속 문제 때문에 지금까지 개인병원으로 머물러 있던 일부 대형 개인병원들은 이번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시행되면 의료법인으로 전환하려 할 것이다. 대형 개인병원들이 법인을 만들고 자회사를 설립해 의료기관을 임대하게 되면 굳이 이면 계약과 같은 불법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합법적으로 많은 동네 병ㆍ의원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의료법에서 의료인이 1개의 의료기관만을 개설할 수 있게 한 것은 의료인의 윤리를 지키고, 의료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며, 의료기관의 모든 의무에 대해 전권을 맡기기 위함이다. 대형 영리병원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구조에서 동네치과 등 1차 의료기관이 고사한다면 치과의사와 환자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평생주치의 관계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1차 의료기관의 종말은 결국 의료비 상승, 환자의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영리병원은 13%에 불과하다. 미국은 이 13%의 영리병원들이 의료수가를 선도했고, 결국 의료비 인상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말하는 의료선진국 미국의 현재는 국내총생산(GDP) 17%라는 기형적인 의료산업을 갖게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다르다. 보건산업진흥원은 2009년 보고서에서 개인병원의 20%가 영리병원으로 전환되면 국민의료비 부담 증가가 최대 2조2,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국립병원이 병상 수 기준으로 10%, 의료기관 기준 6.5%에 불과하다. 사립병원이 90%가 넘는 구조다. 이 90%의 병원 중 반수만 영리병원화 해도 의료비 인상은 감당할 수 없다. 의료비 상승은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초래하고, 보장성 항목 축소가 불가피하게 된다. 결국 건강보험 근간과 의료제도 체계를 위협할 것이 분명하다.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 동네 치과의사로서 의료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것은 의료에 무한 돈벌이를 허용한다면 결국 국민건강을 위협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한 정책 입안에 더욱 귀를 기울이는 정부가 되길 기대한다.
이계원 서울특별시치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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