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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노숙인 급식 대기소 설치 '씁쓸한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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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노숙인 급식 대기소 설치 '씁쓸한 갈등'

입력
2014.07.1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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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행렬 탓 손님 발길 끊겨 매출 90% 줄어 문 닫을 판"

주변 상인들 잇단 민원에

市 "대기소·전용길 만들겠다" 해결책 제시했지만 급식센터선 "인권침해" 반발

“손님이 떨어지니 노숙인들이 눈에 띄지 않게 해달라.” “헌법상 이동의 자유 침해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인근 노숙인 무료급식 대기소 설치를 두고 인근 상인들과 급식센터 ‘해돋는마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급기야 ‘노숙인 전용길과 대기소’라는 처방을 내놓았지만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많다.

17일 낮 12시 서울 지하철 4호선 서울역 13번 출구에 노숙인들이 길게 줄을 섰다. 출구 앞 노숙인 무료급식센터의 식사를 기다리는 이 줄은 계단을 따라 역 안으로 50여m 이어졌다. 급식센터 해돋는마을과 따스한채움터가 문을 연 4년 전부터 매일 세 번 식사시간마다 반복되는 모습이다.

13번 출구 앞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이 줄 때문에 손님이 줄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길 건너 수많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회사원들이 지하도로 건너오지 않아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이다. 급식센터 인근 식당, 술집 등 상인 45명은 지난해 5월 상인연합회를 결성, 서울시에 노숙인들로 인한 매출 감소를 해결하라며 꾸준히 민원을 제기했다.

20년간 이 곳에서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부정(70)씨는 “급식소가 없었던 5년 전만 해도 하루 매출이 40만~50만원 정도 됐는데 요즘은 4만~5만원 벌기도 힘들다”며 “길 건너편 식당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노숙인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4년째 해장국집을 운영하는 김일만(70)씨는 “특히 여름에는 노숙인들이 풍기는 냄새가 고약해 손님이 더 없다”고 울먹였다.

상인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서울시는 지난달 노숙인을 위한 200㎡ 규모의 대기소를 급식소 건물 뒤편에 설치하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대기소로 들어가는 길 50여m도 새로 만들기로 했다. 시의 계획대로면 대기소는 최대 250명을 수용할 수 있어 노숙인이 지하도에 줄 서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해돋는마을은 이에 대해 인권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기연 해돋는마을 사무국장은 “센터 뒤로 노숙인 전용 길을 만들겠다는 것은 서울 한복판에 작은 슬럼가를 만들겠다는 발상이며, 대기소 예정 부지가 철도 바로 옆에 있어 안전사고, 투신 등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노숙인들도 서울시의 계획에 떨떠름한 표정이다. 조모(59)씨는 “노숙인도 사람인데 어둡고 후미진 데 있고 싶겠나. 지금껏 지내온 곳에서 계속 밥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2년째 노숙해 온 김모(56)씨는 “장사가 안 되는 것은 경기 불황 등 복합적인 이유 때문인데 우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기소를 짓고 길을 내려면 해돋는마을의 식자재 보관창고를 옮겨야 하는데 해돋는마을이 결사 반대하고 있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따스한채움터는 특별한 대안이 없어 시의 계획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숙인 인권단체 홈리스행동의 이동현 활동가는 “단순히 노숙인을 사람들에게 안 보이게 하기보다는 서울시가 다른 곳에도 급식센터를 만들어 서울역 부근에 집중된 노숙인들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현주기자 memorybox@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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