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근 후보자 결국 자진 사퇴, 임명 강행 무리수 두다 망신살
당 새 지도부도 어정쩡 자세만, 여권 총체적 난맥상 백일하에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16일 돌연 자진 사퇴한 과정은 박근혜정부 인사 난맥상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청와대는 여론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려다 '여자 문제’라는 돌발 변수가 불거질 조짐을 보이자 급브레이크를 밟아 인사의 명분과 실리 모두 놓친 꼴이 됐다. 청와대 방침을 마지 못해 수용했던 새누리당 지도부는 막판까지 정 후보자 임명을 옹호하는 어이없는 촌극도 빚었다. ‘정 후보자 돌연 사퇴’ 파동은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오기 인사와 청와대의 부실 검증, 이에 대해 제동을 걸지 못한 새누리당 지도부의 한계가 빚어낸 합작품이었다.
추가 의혹 폭로 돌발변수로 하룻 밤사이 급반전
정 후보자의 자진 사퇴 결정은 그야말로 하룻밤 사이에 이뤄진 급반전이었다. 청와대가 전날 오후 국회에 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재요청할 때만 해도 정 후보자 임명 강행 방침은 확고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 후보자 지명 발표 이후 청와대 관계자는 “추가적인 장관 인선은 없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오찬 회동에서도 박 대통령은 인사 문제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다는 의견을 전달 받았으나, “나는 욕심이 없다. 역사를 위해서 하는 거다. 야당이 비판하는 데 여당이 그래서는 안되지 않나. 여당이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도와달라”고 답했다고 한다. 정 후보자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는 “다음에 설명하겠다”며 언급하지 않았으나, 사실상 임명 절차를 밟겠다는 취지여서 회동 분위기가 싸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박 대통령은 회동 직후 김무성 대표와 5분간 독대하면서 “장관 인선 문제는 나에게 맡겨달라”며 양해를 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정 후보자 임명 강행 의지를 보였던 청와대는 그러나 야당이 정 후보자의 추가 의혹을 폭로하겠다고 압박하자 밤사이 급박하게 움직였다. 여야 정치권과 청와대 측의 얘기를 종합하면, 전날 오전부터 국회 교문위 야당 간사인 김태년 의원이 여당 간사인 신성범 의원에게 “정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면 추가로 폭로할 문제가 있다”고 경고했고 이에 신 의원은 청와대에 여러 경로로 이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고 한다. 김 의원실은 정 후보자의 '여자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제보와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이 전말을 파악하기까지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청와대는 밤 사이 여러 경로를 통해 상황 파악에 나섰다. 원내 핵심 인사들도 청와대 측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사퇴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후보자의 여자 문제에 대해 한 방송사가 취재에 나선 것도 상당한 압박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날 오전 정 후보자 관련 사안이 박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도로 대다수 언론이 정 후보자 임명 강행 방침을 비판하고 나선 것도 박 대통령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오전 비서진 회의에서 더 이상 정 후보자를 끌고 가기가 어렵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위증과 폭탄주 회식 논란 등을 적극 해명하며 버텨왔던 정 후보자도 결국 이날 오전 10시 10분께 긴급 자료를 내고 자진 사퇴를 공식화했다.
막판까지 끌려간 새누리당 지도부
상황이 급반전하는 가운데 새누리당 새 지도부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열린 최고위원ㆍ중진 연석회의 때까지도 정 후보자의 사퇴 결정을 몰라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김무성 신임 대표는 오전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정 후보자의 임명 방침에 대해 “(대통령이) 정 후보자에 대해서 사실과 조금 다르게 알려졌다고 아마 생각하는 것 같다”며 “대통령 결정에 대해 조금 협조해주기를 부탁 드린다”고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석회의에서는 친이계 이재오 의원과 정병국 의원이 정 후보자의 임명 방침에 쓴 소리를 쏟아내자 곤혹스런 기색도 내비쳤다. 김 대표는 비공개 회의 도중에서야 정 후보자 사퇴 결정을 쪽지로 전달 받고 “(정 후보자가) 오늘 사퇴할 것으로 안다”고 간단하게 참석자들에게 알렸다고 한다.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며 수평적 당청 관계를 강조해왔던 김 대표로선 처음 맞닥뜨린 현안에서부터 제대로 체면을 구긴 것이다. 당 일각에서는“김 대표가 대통령의 결정을 마지 못해 수용했다가 덤터기를 쓴 꼴이 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부실 인사 책임론 다시 불거질 듯
여론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2기 내각의 조기 안정을 위해 정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려던 청와대로선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격이다. 인사는 인사대로 실패했고, 임명 강행 움직임으로 야권과의 소통이나 여론을 무시하는 모습도 보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야권과의 소통 정치를 선도하며 정국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타이밍도 놓쳤다.
특히 정 후보자 사퇴 파동으로 청와대 부실 인사 책임론도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 지난 10일 박 대통령과 여야 원내지도부 회동에서 야당이 정 후보자의 자질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와대가 정 후보자 측의 해명만 듣고 임명을 밀어붙이다가 화를 자초한 것이다. 야당의 한 의원은 “김명수 전 후보자의 경우 면접만 제대로 했더라도 걸러낼 수 있었고, 정 후보자는 평판 조사만 해보면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 후보자의 '여자 문제'가 여권 입장에선 부메랑을 맞은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야당으로서도 전면에 내세우기 껄끄러운 사안이었으나 박근혜정부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사생활 문제’를 들춰내 사퇴시켰다는 점에서 야당의 압박에 강하게 반박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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