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 위증 논란이 제기됐던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가 어제 자진 사퇴했다. 정 후보자의 전격적인 사퇴 과정에서 보인 난맥상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나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등 참모들의 판단 능력이 의심스럽고, 대책 없는 청와대 인사 시스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부적격 여론이 비등했던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와 정 후보자 가운데 김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하고, 정 후보자에 대해서는 국회에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다시 요청하는 형식으로 임명 강행 의사를 보였다. 그런데 정 후보자는 이튿날 오전 10시쯤 “다 설명 드리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그냥 물러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면서 갑자기 사퇴 의사를 밝혔다. 굳이 국회에 청문보고서를 다시 요청했던 대통령의 모양새만 아주 우습게 됐다.
대통령 권위를 고려해 이처럼 복잡한 사퇴 수순을 택한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 의중과 달리 정 후보자가 부정적 여론을 감안해 단독 플레이를 한 것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야당이 개인 생활과 관련한 결정적인 약점을 폭로할 조짐을 보이자 청와대나 정 후보자가 마지못해 사퇴 카드를 내밀 수밖에 없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전날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 회동에서 보인 박 대통령의 임명 의지로 볼 때 ‘새로운 하자(瑕疵)’ 돌출 보도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정확한 사퇴 이유가 무엇이든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이어 이번에도 사퇴 과정조차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는 국가최고기관의 무능을 여실히 드러냈다. 인사검증 부실 못지않게 한심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앞서 인사청문회를 담당했던 새누리당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들조차 정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적지 않았고, 이를 여러 경로로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데도 박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이만저만한 불통이 아니다. 국회에서 “인사 실패는 내 책임”이라고 했던 김기춘 비서실장은 이번 사달에 대해서는 뭐라고 해명할 것인가.
박 대통령이 인사 실패 대책으로 인사수석실을 신설하고, 인사 전문가라는 관료 출신의 정진철 대전복지재단 대표를 인사수석으로 내정했지만 인사 혁신도 시늉만 내려는 게 아닌가 의심부터 앞선다. 인사 추천은 인사수석실이, 검증은 민정수석실이 담당토록 하는 이원체제를 통해 인재 풀과 참모의 추천권한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라지만 한계가 있어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 역시 박 대통령의 특별한 인식 전환이 없으면 헛일이다.
황우여 새누리당 전 대표의 사회부총리 지명으로 기존에 당의 친박 체제가 그대로 옮겨진 듯한 2기 내각을 보면 자기 사람, 자기 진영만 보겠다는 대통령의 인식이나 수첩인사의 한계가 그대로 묻어난다. 대탕평을 말하던 대선 당시 공약을 끄집어 내는 것도 식상해졌다. 대통령부터 달라지지 않는데 국가혁신, 국가개조를 운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제도를 탓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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