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단계 공사를 마친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의 모습이 잇따라 언론에 공개되고 있다. 경주 방폐장은 원자력위원회의 인허가만 받으면 곧바로 운영에 들어가 중ㆍ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10만 드럼을 지하동굴 안에 설치된 사일로에 저장한다. 1978년 국내 첫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전 1호기가 가동에 들어간 3년 뒤인 1983년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 대책위원회가 설립돼 대책 수립에 착수한 지 꼬박 31년 만의 일이다.
경주 방폐장은 장기간의 열띤 사회적 논란이 반영된 덕분인지, 세계적 수준의 안전성을 자랑한다고 한다. 이로써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 방사성폐기물 관리 정책에 숨통이 트인 셈이다. 그러나 경주 방폐장이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는 것은 중ㆍ저준위 폐기물에 한정돼 있다. 원전의 냉각계통에서 발생하는 냉각수나 세척액, 작업복과 장갑, 부품과 공구 등이 대부분이고, 병원의 방사선 진단ㆍ치료 관련 폐기물 등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이런 폐기물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인체와 환경에 치명적 위험을 안기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즉 사용후핵연료(원전에서 연료로서 태우고 난 폐연료봉)는 여전히 원전 건물 안의 냉각수조나 공랭식 콘크리트 창고에 임시로 저장돼 있다. 이 ‘우라늄 숯’도 참숯처럼 뜨겁고, 다량의 방사선을 쏘아낸다. 꾸준한 냉각으로 열을 식히는 데 수십년이 걸리고, 방사능이 자연상태로 낮아지는 데는 30만년이 걸린다. 원전의 수명을 아무리 연장하더라도 현재처럼 원전 안에 보관해 둘 수 없다. 더욱이 냉각수조나 건식저장고가 2016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늦어도 2050년이면 완전한 포화상태에 이른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는 듯하지만 핵폐기물 관리 선진국의 사례에 비추어 지금 당장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공론화해도 임시저장소 포화 이전에 결론을 내고 구체적 대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본격적 논의를 거쳐 경주 방폐장이 건설되기까지 30년 넘게 걸린 것도 참고해야 한다. 특히 부지 선정이 거의 유일한 문제였던 중ㆍ저준위 폐기물처분장 문제와 달리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고, 그것들이 서로 뒤엉켜 언제든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 공감대’라는 기본 방침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가상의 이해당사자는 물론이고 국민 모두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지난해 최초로 출범해 연말에 끝나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의 활동기간 연장 등 정부의 적극적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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