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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합숙하실래요?

입력
2014.07.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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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를 완성하면 뿌듯한 포만감에서 한동안 헤어나질 못한다. 세상에 없는 미증유의 이야기를 써냈다는 도취감이 최소 보름이상은 느슨하게 만든다. 공연이 끝나도 마찬가지. 허탈해서겠지만 좋았던 기억을 계속 붙들면서 여운에 취하고 싶어진다. 그 때 누군가가 구미가 당기는 다른 일을 제안해도 마치 포식을 끝낸 고양이과 동물처럼 군침이 안 돈다. 마냥 나무그늘을 찾아 퍼지고만 있고 싶다.

헌데 얼마 전 합숙을 들어갔다. 내가 먼저 제안해서다. 1월에 초고를 끝낸 작품이 있는데 이게 영 찜찜했다. 나는 그때 대단하게 일을 마쳤다는 감상에 흠뻑 빠져 있었다. 여럿을 모아 읽기를 했을 때도 내 맘에 쏙 들었다. 그런데 두 달이 가고 세 달이 지나면서 초고를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다시 말해 고쳐야 할 게 있다. 분명한 것은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싫다는 것. 하니 자꾸 외면만 할 밖에. 그러나 종당 숨은 턱까지 차오른다. 제작자 측에서도 마음이 다급해졌고 그 바람에 나 역시도 초조해졌다. 대본의 보완을 얼른 끝내고 스태프를 구성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합숙으로 부러뜨리는 수 밖에 없다.

하면 할수록 합숙은 매력이 있다. 음악감독과 조연출을 데리고 모처에 방을 잡았다. 회의실에서도 회의가 잘 진행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특히 창의적인 작업용 회의의 경우는 합숙만한 것이 없다는 게 나의 경험칙이다. 사람의 뇌는 집중을 할 수 있는 컨디션 속에서 성능이 더욱 제대로 발휘되지 않던가. 아무래도 회의실은 배수진이 없기 마련이고 산만해지기 일쑤다. 그런데 합숙회의는 어수선해도 퀄리티가 높다. 부지불식간에 우리가 왜 합숙을 왔는가에 대한 이유에 계속해서 답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마냥 회의만 하다가 먹고 자고 씻고, 다시 회의를 할 수 있는 여건이라서 생각이 끊임없이 익어간다. 다른 생각은 안 난다. 그러다 보니 아이디어가 빠른 속도로 숙성한다. 그리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더할 것과 뺄 것이 결정되면서 군살도 빠져나가고 근육은 더욱 정교해진다.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익숙했던 것들도 새로워져 달라 보인다. 마음에 안 들던 데까지 도리어 창의적으로 수용된다고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교환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가 다시 생명을 얻어 풀어내지기 시작하는데 그 쾌감이 가히 환상적이다.

물론 첫날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처음에는 잘 안 풀린다. 그러다가 서서히 시간의 압박이 가중되면서 절박한 위기의식이 창의력에 불을 붙인다. 이번의 합숙도 여지없이 마지막 날이 좋았다. 10여 쪽 분량의 이야기를 걷어냈다. 없어도 무난한 장면이었다. 나열식으로 붙였던 것도 밀도를 높여 통합하고 노래에도 더 여러 층위를 넣어 입체감을 살렸다.

그런데 작품의 완성도를 정교하게 하는 것보다 위대한 합숙의 묘미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이야기에 대한 애정을 만드는 것. 화자로서 이야기를 애타게 만들고 싶은 욕망을 만들어내는 것! 그야말로 합숙의 제 맛이 아닐 수 없다. 잘 만드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분명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가끔 어떤 작품은, 하면서도 내가 이것을 왜 해야만 하지? 하는 엉뚱한 질문을 던지게 할 정도로 주제가 모호하다. 그건 사실 하는 사람의 말이지, 보는 사람은 ‘내가 왜 당신이 별로 내켜 하지도 않는 이야기를 돈을 줘가며 봐야 하지?’하는 말과 질량이 똑같다. 그렇게 되면 연극은 참담해진다. 원하지도 않는 이야기를 누구는 하고 누구는 보고 있다면 그게 무슨 바보들의 놀이인가. 너무나 하고 싶고 너무나 보고 싶어야 비로소 의미가 생겨난다. 합숙하는 동안 우리는 내내 이 얘기가 필요한가와 절실한가를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치하게 조작한 것이나 억지로 꿰어 만든 사건들이 맥박을 잃고 털려나갔다.

물론 미흡하기가 아직도 그지없다. 하지만 초고보다는 정리가 됐다. 몇 번을 더 고쳐야 할 테고 필요하다면 또 합숙에 들어가야 한다. 마다할 까닭일랑 전혀 없다. 이야기를 그저 애타게 하고 싶을 따름이니까.

고선웅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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