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에서 사퇴까지 33일은 원칙 없는 인사가 부른 혼란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문화융성을 핵심 국정 과제로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제대로 추진하려는 의지가 있느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논란은 제쳐두고라도, 전문성이나 행정 경험이 없는 인사를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부터가 난맥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초대 수장에 문체부 차관 출신인 유진룡 장관을 지명했을 때 인수위와 여당에서는 “전문성을 고려한 인사”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불과 1년 반 뒤, 대통령은 정치인으로 직업을 바꾼 기자 출신의 정 전 후보자를 지명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여당 공천을 받아 파주갑에 출마했다 낙마한 사람을 돌연 아리랑TV 사장에 임명할 때도 의아했는데, 불과 3개월 만에 문체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원칙 없는 인사의 대표 사례”라고 말했다. 당직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의 한 의원도 “당에서도 문화정책에 비전문가인 언론인 출신이 현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을 실현해 나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더욱이 현 장관의 업무 수행에 큰 결함이 없는데도 세월호 침몰 참사의 책임을 묻는 개각에 문체부가 포함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한국문화정책학회장인 정홍익 가톨릭대 초빙교수는 “지금은 문화융성의 주무 부처로서 문체부가 실무적인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할 때”라며 “인사로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새 후보자가 지명돼 장관에 임명되고 업무 파악을 하기까지 또다시 수개월이 걸리지 않겠느냐”며 “국정 과제를 추진하는 데 남은 임기 3년 반은 결코 많은 시간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더욱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8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9월) 등 문체부가 지원하고 준비하는 굵직한 행사가 코앞이다.
문체부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직원들이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 사실을 안 것도 이날 오전 언론 보도를 통해서였다. 새 장관이 임명돼 업무를 시작하리라고 예상했던 문체부 공무원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유 장관도 이 때문에 이날 오전 세종시 청사가 아닌 서울에 머무른 것으로 알려졌다.
문체부 한 공무원은 “대통령이 문화융성을 국정 과제로 밝혀 조직의 사기와 의욕이 컸는데 최근의 인사 혼란으로 싱숭생숭하다”며 “문화정책은 전문성과 시간이 중요한데, 청와대가 단기간의 가시적인 성과를 따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 전 후보자는 이날 오전 문체부 대변인을 통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날 오전 유동훈 대변인에게 연락해 “좀 보자”고 한 뒤, 오전 9시 40분께 서울 시내 모처에서 유 대변인을 만났다. 정 전 후보자는 “지금부터 하는 말을 좀 적어달라”며 문구를 직접 읊었다고 한다. “공직 후보자로서 국민께 희망을 드리지 못하고 마음을 어지럽혀드려 용서를 빈다. 후보자 직을 사퇴한다.” 단 다섯 문장이었다. 미리 적어온 메모는 없었다. 이어 그는 “가능한 한 빨리 언론에 배포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사퇴의 이유나 심경 설명도 달리 없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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