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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청소년들이 킥킥대며 몰래 보던 '비밀일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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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청소년들이 킥킥대며 몰래 보던 '비밀일기' 돌아왔다

입력
2014.07.1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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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 국내 청소년들이 교과서 아래 놓고 몰래 보던 책 중 ‘비밀일기’가 있었다. 영국 소년 아드리안 모올의 일기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책은, 사춘기 소년의 엉뚱한 내면과 그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계를 유머러스하게 묘사한 내용으로 국내에서 40만부, 전세계적으로는 3,0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들어 절판된 ‘비밀일기’가 ‘에이드리언 몰의 비밀일기’라는 제목으로 출판사를 바꿔 다시 출간됐다. 이미 출간됐던 1,2권에 더해 주인공의 청년기를 다룬 3,4권이 처음으로 번역됐고 역자도 바뀌었다. 출판사 놀은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가벼운 오락소설로 여겨져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한 면이 있다”며 “새로 펴낸 책에는 본래의 색깔과 작품성을 고스란히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1,2권에서 주인공 에이드리언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이다. 그 나이대 소년들이 흔히 그렇듯 근거 없는 자신감과 공상으로 가득한 그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성(性)이다. 여자친구 판도라의 가슴을 만지고 싶어 애태우고, 수시로 자신의 ‘물건’ 길이를 체크하는 그의 모습에 독자들은 웃음을 감추기 힘들다.

언뜻 가벼워 보이는 소년의 기록 속에는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숨어 있다. 아빠는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며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엄마는 옆집 남자와 바람이 나 가출해버린다. 풍자의 강도는 주인공이 청년이 되는 3,4권에서 한층 높아진다. 성인이 된 에이드리언은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판도라의 새 남자친구 집에 얹혀사는 ‘잉여인간’이 되고 만다.

유머로 포장된 등장인물들의 불행 속에는 80년대 영국 사회의 병폐 ? 빈부 격차, 실업, 경제난, 가정 해체 ? 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데, 3권에 번외로 수록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의 가상 일기는 이 불행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노골적으로 지목한다. ‘마거릿 힐다 로버츠(대처의 결혼 전 이름)의 비밀일기 14와 1/4살’에 쓰인 “가난한 사람들이 우유를 사먹을 돈이 없다면 우유를 먹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규칙은 규칙이다. 지키라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는 난장판이 되고 말 것이다.” 등의 구절은 훗날 영국 서민들을 고통으로 몰아 넣은 신자유주의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이 책으로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이 된 수 타운센드는 올해 4월,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이 책은 내게 너무도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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