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한국인으로 귀화한 하빌 우딘(43)씨는 13일 오전 6시 30분쯤 자신이 일하는 식당 직원에게서 급한 연락을 받았다. 동료인 비노드 싱(31)씨가 서울 용산경찰서 보광파출소에 폭행 혐의로 잡혀 있으니 빨리 가서 통역을 해주라는 전화였다. 우딘씨는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모국어 외에도 힌두어 영어 한국어 등에 능통하다. 반면 인도 출신 싱씨는 한국에 온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 힌두어 말고는 거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파출소에서 만난 싱씨는 턱 어깨 정강이 등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고, 만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반면 싱씨에게 맞았다고 주장하는 한국인 두 명은 겉으로 드러난 상처 없이 비교적 멀쩡해 보였다.
파출소 직원 A씨는 우딘씨에게 “지나가는 한국인을 왜 때렸는지 물어보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우딘씨는 싱씨가 더 큰 상처를 입었기에 “싱씨가 폭행당한 것 아니냐”고 경찰에게 되물었다. 돌아온 건 “야, 네가 조사하러 왔냐. 입 닫고 있어”라는 B(42) 경사의 폭언이었다.
우딘씨가 “싱씨가 피해자일 수도 있고, 서로 때렸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자 B 경사는 “이런 식으로 하면 체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우딘씨는 “‘체포할 테면 하라’며 두 손을 내밀자 경찰이 손을 때리고 가슴을 밀쳐가며 파출소 밖으로 쫓아냈다”고 주장했다.
“고발하겠다”는 우딘씨에게 C(42) 경위는 “파출소에서는 조용히 있어야지 왜 시끄럽게 만드냐”며 “이걸로 문제 일으키면 우리도 지나가는 인도 사람들 좋게 안 봐준다”고 재차 협박했다. 결국 싱씨는 제대로 항변도 못해보고 한국인 두 명을 일방적으로 폭행한 혐의로 이날 오후 불구속 입건됐다.
우딘씨는 15일 보광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의 부당한 행동은 명백한 인권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폭언과 폭행, 협박까지 하는 것은 인권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내가 겪은 일뿐만 아니라 진술 기회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혐의를 뒤집어 쓴 싱씨를 위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광파출소 직원은 “중학생이 인도 사람이 따라오면서 괴롭힌다고 도움을 요청해 피해자들이 다른 행인과 함께 싱씨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싱씨 진술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받지 못했고, 피해자 두 명의 진술 등을 종합해 상황을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또 우딘씨가 큰 소리로 항의하고 조사를 방해해 ‘자꾸 이런 식으로 하면 체포하겠다’고 말한 것과 우딘씨를 파출소 밖으로 끌고 나간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폭언과 폭행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민정기자 mjkim7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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