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내각은 지난 1일 ‘국가 교전권(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졌음을 선언했다. 일본은 ‘공격’ 전쟁이 가능한 나라가 됐다. 아베 내각은 상륙작전용 함정 도입을 고려하는 등 무기 체계를 ‘방어’용에서 ‘공격’용으로 전환하고 있고, 가상의 적을 상정한 다국간 군사훈련에도 참여키로 했다. 주변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베 내각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다.
일본은 원칙적으로 군대를 보유할 수 없다. 일본 헌법 제9조는 무력행사·군대 보유· 교전 등을 금지하고 있다. 전 세계 헌법 중 일본 헌법이 가장 ‘평화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그러나 평화헌법은 곧 ‘비평화’적이 됐다. 일본은 1950년대 중반 이후 헌법 제9조를 ‘방어’ 전쟁이 가능하도록 해석해 ‘자위대’라는 이름으로 비공식적 군대를 보유해왔고, 1978년 미일 간 방위협력을 통해 공식적으로 ‘개별적 자위권’을 인정받았다.
‘개별적 자위권’은 공격받았을 경우 ‘방어’만을 위한 전쟁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아베 내각 선언 이전 일본은 ‘공격’을 받아야만 전쟁이 가능했다. 그러나 아베 내각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선언으로 일본은 상황에 따라 공격받지 않아도 선제적으로 전쟁이 가능하게 됐다. 아베 내각은 ‘방어전쟁만이 가능하다’는 헌법해석을 ‘필요시 공격이 가능하다’는 해석으로 변경하는 방법으로 이뤄냈다.
헌법은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형사절차를 보장한 영국 권리장전(1689년), 행복추구권을 선언한 미국독립선언(1776년), 평등권을 규정한 프랑스 권리선언(1789년) 등 근대 헌법의 모태들이 모두 그러하다. 이 때문에 헌법은 개정 절차가 까다롭고, 위정자들은 개정이 아닌 해석 등을 통해 헌법 내용에 변화를 줘 원하는 바를 이루려 한다.
그러나 헌법 해석도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해석의 한계를 준수해야 한다. 폰 사비니는 법 해석에 대해 4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문리적 해석에서 출발해 그것만으로 부족할 경우 논리적, 체계적, 역사적 해석을 통해 최종적으로 헌법이 의미하는 바를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위 과정을 통해 인정될 수 있는 해석만이 정당성을 얻게 된다.
아베 내각은 일본 헌법 제9조의 ‘군대보유 금지, 교전 금지’ 내용을 ‘공격’ 자위권이 가능하다고 새롭게 해석했다. 그러나 아베 내각의 해석은 위 해석방법에 기초할 때, 특히 입헌자가 헌법 제정 시 전범 국가의 오욕에서 벗어가기 위해 헌법에 ‘평화적’ 내용을 명시하고자 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문제는 일본의 자의적인 헌법 해석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1930년 일본 하마구치 내각은 미국, 영국 등과 군축 조약을 체결했다. 일본 강경군부세력은 조약 내용에 반발했다. 군비감축은 군부의 최종 목표인 대동아공영권 달성에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이 때 일본 군부세력이 들고 나온 것이 바로 ‘헌법해석’이다.
일본제국헌법 제11조는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한다’, 제12조는 ‘천황은 육해군의 편제 및 상비군의 숫자를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천황이 군 병력량에 관한 결정 권한을 보유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 강경군부는 위 헌법조항을 “내각은 군 병력량 조정에 관여할 수 없다”고 확대 해석했다. 당시 일본 내각이 군 예산 편성권 등을 가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런 해석은 지나치게 ‘자의적’이었다. 위 해석으로 인해 일본 강경군부는 내각의 견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군비를 확장,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진주만을 공습했다. 헌법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을 전쟁터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자의적’ 해석은 85년이 지난 오늘날 되풀이되고 있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윈스턴 처질의 말이다. 아베 내각과 일본 국민에게 부탁한다. 부디 ‘자의적’ 헌법 해석으로 군비확장에 나서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했던 과거의 역사를 잊지 말기를. 그 역사를 잊는다면 일본의 미래도, 동북아 평화의 미래도 없다는 점 또한 꼭 기억하기를.
허윤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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