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7.30 재보선 출마 결정은 충격에 가깝도록 실망스러웠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에 대한 경찰 수뇌부의 축소 은폐 압력을 폭로한 그의 용기가 고작 국회의원 자리를 위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출마 결정 후 “진정성이란 결국 진실에 의해 담보된다”고 한 그의 말과는 정반대로 진실은 흐려지고 진정성은 의심스러워졌다. 이제 누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권 전 과장이 말하는 진정성이란 게 수사 축소 외압을 느낀 게 진실이었다는 뜻이라면, 지난달 경찰에 사직서를 낼 당시 출마 생각이 없었던 게 진심이었다는 뜻이라면 그건 착각이다. 흔히 진정성이라는 용어를 남용하는 이들이 빠지는 오류일 뿐이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과 평가는 나의 속마음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에 달려있다. 어떤 행위를 선택해야 하는지 갈등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내부고발자가 예약된 국회의원의 자리로 가는 것은 나쁜 선례다. 내부고발의 목적이 정의나 진실이 아니라 사욕이 깃들어 있다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권 전 과장의 선택의 첫번째 잘못이다. 여당의 공세처럼 ‘보상 공천’이 아니라고 권 전 과장은 어떻게 항변할 것인가.
보다 심각한 파장은 근본적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의 본질을 혼탁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대선개입 사건 수사 축소?은폐 혐의에 대해 2월 1심, 5월 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고, 여기에 좌절을 느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권 전 과장은 말했다. 재판에서 권 전 과장의 증언은 거의 인정되지 않았지만 재판 자체의 한계도 있었다. 2012년 대통령선거일을 불과 사흘 앞두고 경찰이 “선거개입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리한 영향을 미친 것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여전히 정치적 책임을 묻고 있다. 또한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의 또 다른 축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재판 역시 아직 1심 선고가 나오지 않은 채 진행 중이다.
이처럼 여전히 진실과 책임 규명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국회로 나아가는 권 전 과장이 어떻게 과거의 폭로와 진술이 진실하다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당장 자유청년연합 등 보수성향 시민단체들은 그를 모해위증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김 전 청장 관련 재판에서 그의 증언이 거짓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고발이야 보수층의 정치적 공세로 치부한다 쳐도, 권 전 과장은 이미 도덕적 흠결을 안고 정치를 시작하게 됐다. 정치인으로서 이 사건의 진실을 계속 파헤치겠다고 마음먹었는지 모르나 이조차 앞으로 늘 정치적 공방에 휩싸이게 될 게 뻔하다.
사표가 수리될 때만 해도 “7.30 재보선 출마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공언해 놓고 불과 열흘만에 뒤집은 것도 문제다. 거짓말이라면 부도덕하고, 그 새 생각이 바뀌었다면 너무 가벼운 처신이다.
지난해 8월 국정원 선거개입 관련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은 권 전 과장에게 집요하게 “공무원이라 밖으로 표현은 못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길 바랐죠? 지금도 이 나라 대통령이 문재인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라고 물었다. 그 때 “의원님이 하고 있는 질문은 헌법(제19조 양심의 자유)에서 금지하는 ‘십자가 밟기’와 같은 질문”이라고 당차게 답했던 권 전 과장을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또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이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 경찰이냐”고 물었을 때 “질문의 의도가 무엇이냐”고 따져물었던 그를 기억한다. 권 전 과장에게 얼굴 모르는 이들이 응원 편지와 떡을 보냈던 이유는 그가 관료적인 경찰 조직에서 쉽게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를 당당하게 냈기 때문이었다. 그 목소리를 기억하는 국민에게 권 전 과장의 행보는 배신에 가깝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훌륭한 업적을 이룬다 하더라도, 정의와 진실을 향한 용기에 대해 응원했던 이들의 실망은 보상받기 어렵다. 김희원 사회부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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